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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8.11.18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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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포암 이백하 선생이 기초한 아우내장터 항일독립선언서 원본을 찾습니다
 
신상구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국학박사, 향토사학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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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산 신상구 국학박사의 충청지역 항일독립운동사 연구 업적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인 대산(大山) 신상구(辛相龜, 68) 국학박사는 1950년 충북 괴산군 청천 출신으로 충청지역을 중심으로 향토의 역사와 문화를 체계적으로 조사 연구하는 향토사학자로서 특히 지난 30여 년 간 충남 천안과 내포지역의 항일독립운동사를 정립하는 데에 일조를 해왔다.

 

예산 삽교중에 근무할 당시에는 덕산지역 항일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야운(冶雲) 조인원(趙仁元, 1875-1950) 선생을 한국 최초로 조사 연구하여 학숳논문을 발표하고, 매헌(梅軒) 윤봉길(尹奉吉, 1908-1932) 의사의 생애와 업적을 조사 연구하여 예산신문에 연재하였다.

 

당시 5대 국사편찬위원장이었던 고 박영석(朴永錫) 박사는 예산에서 개최된 내포지역 항일독립만세운동 관련 세미나에 참석해 내가 조인원 선생의 생애와 업적에 대한 학술논문을 발표하는 모습을 보고 만면에 웃음을 띠며 열렬한 박수를 보내주어 내 마음을 감동시킨 바 있다.

 

천안여중에 근무할 때에는 내포지역 동학농민운동을 주도하고 항일독립운동을 전개한 천도교 4대 법종 춘암(春菴) 박인호(朴寅浩, 1855-1940) 선생을 한국 최초로 조사 연구하여 천도교 대전교구 기관지인한울빛 세상에 학술논문을 발표하고, 태안중에 근무할 때에는 태극도의 3.1독립운동과 조선독립단 서산지부의 활약상을 소개하여 내포지역 항일독립운동사를 정립하고, 그분들의 업적을 선양하는 데에 나름대로 많이 기여했다.

 

▲ 항일독립투사 이백하 선생 공적조서     © 출처= 연합뉴스

 

천안북중과 천안중에 근무할 당시에는 한국 최초로 포암(逋巖) 이백하(李栢夏, 1899-1985) 선생의 생애와 업적을 3년 동안 조사 연구하여 학술논문을 발표함으로써 한국학중앙연구원장상을 수상한 바 있는데, 특히 이백하 선생이 기초하고 조인원 선생이 기미년 41일 아우내장터에서 낭독한 항일독립선언서를 발굴해 언론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그리고 기미년 3.3일 천안역전 독립만세운동 관련 기록을 처음으로 발굴해 언론의 주목을 받은 적이 있다.

 

20128월 말에 천안중에서 정년퇴임한 후에도 충청지역의 항일독립운동사를 계속 조사 연구했다. 그 결과 2017년에는 사단법인 옥천향토사연구화에서 발간한옥천향토문화21집에옥천군의 항일독립운동사 소고(1)란 학술논문을 발표했다. 그리고 2018년에는 사단법인 옥천향토사연구화에서 발간할 예정인옥천향토문화22집에옥천군의 항일독립운동사 소고(2)란 학술논문을 발표할 계획이다.

 

이 밖에도 계연수, 신채호, 홍범도, 안중근, 윤동주, 이상화, 이육사, 심연수, 김좌진, 이회영, 최재형, 김시헌, 최운산, 나철, 류인식, 서일, 박은식, 김상옥, 이유립 등 수많은 항일독립운동가들을 조사 연구하여 일간신문에 게재하여 한국 국민들이 항일독립정신을 창조적으로 계승발전시키는 데에 크게 기여했다.

 

대전일보, 충청일보, 충청투데이, 동양일보, 중부매일, 충북일보, 충청타임즈, 중도일보, 충청신문, 중앙매일, 대전투데이 등 지방 일간지는 물론 동아일보, 경향신문, 문화일보, 서울일보 등 중앙 일간지에서도 지면을 많이 할애하여 대서특필하여 역사학계는 물론 전 국민적인 관심을 불러모았다. 그러자 YTN, 대전 KBSMBC, 청주 CJB 방송국, 상생방송에서도 나를 출연시켜 보도함으로써 향토사학자로서의 긍지와 자부심을 갖게 해주었다.

 

2. 아우내장터 항일독립만세운동의 경과

 

기미년인 191941일 아우내장터에서는 천안, 진천, 청원, 연기 지역 주민 3000여명이 모여 3단계로 일제의 조선 식민지 지배에 반대하는 항일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1단계는 41일 오후 1시 무렵 시작되었다. 조인원은 시장의 군중 앞에서 아우내장터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하였다.

 

이에 시장 군중들이 따라 크게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시위 군중은 대한 독립이라고 쓴 큰 깃발에 태극기를 달고 이를 앞장세워 거리를 누비며 대한 독립만세 시위를 벌였다. 시장에서 약 50보정도 떨어진 병천 헌병주재소의 소산(小山) 소장 등 일경 5명은 만세 소리에 놀라 시장으로 출동하여 해산을 요구하였으나 시위대가 불응하자 즉시 발포하여 많은 사상자를 냈다.

 

두 번째 단계는 오후 4시 경에 일어났다. 사상자들의 친지들이 시신을 헌병 주재소로 옮기고 항의를 하자 김교선, 한동규, 이백하, 이순구 등이 군중 100명과 함께 주재소로 가서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를 불렀으며 사망자에 대한 조치와 구금자의 석방을 요구하였다. 군중이 점차 늘어나서 1500명이 이르렀을 때 헌병들이 권총을 발포하여 또 많은 사상자를 냈다. 시위대는 헌병 보조원 맹성호와 정수영에게 동족으로 같은 민족을 죽이느냐고 항의를 하였고, 유관순은 주재소장을 잡아 낚아채면서 항의를 하였다.

 

세 번째 단계에서는 군중이 아우내장터 부근의 산과 시장에 모였다가 면사무소와 우편소를 습격하고 전화선을 절단하는 등 시위를 벌였다. 일본 헌병과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무차별적으로 총을 난사하고, 총검을 휘둘러 현장에서 사망한 사람이 무려 19명에 달했다. 유관순 열사는 아버지 유중권과 어머니 이소제를 비롯한 7명의 친인척을 잃었다. 김구응 의사와 노모 최정철 지사도 독립만세시위 현장에서 순국했다.

 

그리고 30여 명의 부상자가 발생했고, 20여 명이 체포돼 옥고를 치렀다. 조인원(趙仁元유관순·유중무 각 3년 형, 김용이·조병호 각 26개월 형, 김상훈·백정운(白正云) 16개월 형, 조만형·박제석 각 8개월 형, 박봉래 기각, 신씨(申氏) 무죄, 김교선·한동규·이백하·이순구 각 2년 형, 김상철 6개월 형 등의 판결을 언도받았고, 유관순은 부당한 재판 결과를 거부하면서 저항한 끝에 법정 모독죄가 추가되어 7년 형을 선고받았다.

 

아우내장터 항일독립만세운동은 호서지방 최대의 항일독립만세운동으로 독립선언서를 지역화 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가 매우 큰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런데 미국 일간 뉴욕 타임스(NYT)가 유관순 열사 순국 98년만에 독립운동가 유관순 열사(1902~1920)의 투쟁을 조명하는 부고 기사를 2018330일자(현지시간)에 실어 전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 자료= 국민일보, 2018년 3월30일자.     © 아산톱뉴스

  

뉴욕타임스는 3월 초부터 백인 남성 위주의 부고 기사에서 탈피 역사적으로 저평가 받은 여성들의 삶을 재조명해보는, 일명 주목받지 못한(overlooked)’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유관순 열사의 부고 기사도 그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쓰여졌다. 해당 기사는 329일 뉴욕타임스 홈페이지 메인을 장식하기도 했다.

 

그리고 유관순 열사를 기독교 신자로 일본의 통치에 저항한 한국의 독립운동가로 소개했다. 당시 이화학당 학생이었던 그가 3·1운동을 이끌게 된 과정도 자세히 적었다. 최남선 등 민족대표 33인이 쓴 독립선언문을 고향 천안으로 들여오고, 직접 제작한 태극기를 나눠주며, 조국 독립을 촉구하는 연설을 하는 등 만세 운동을 주도했다고 전했다.

 

또한 서대문 형무소 수감 이후 유관순 열사의 행적에도 주목했다. 모진 고문으로 숨을 거두기 직전까지 조국의 독립을 외친 그의 기개를 높게 평가했다. 유관순 열사가 수감 도중 남긴 발언인 내 손톱이 빠져 나가고, 내 귀와 코가 잘리고, 내 손과 다리가 부러져도 그 고통은 이길 수 있으나, 나라를 잃어버린 그 고통만은 견딜 수가 없다. 나라에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만이 나의 유일한 슬픔이다.”를 인용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이 신문은 “1919년 봄 한국 독립을 지지하는 평화 시위 요구가 나왔을 때, 유관순이라는 이름의 16세 소녀는 자유를 향한 민족적 갈망의 얼굴이 됐다고 적었다. 3·1운동이 곧바로 독립을 가져오진 않았지만, 민족의 단결과 저항에 촉매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2015년 서대문 형무소를 찾은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 총리가 무릎을 꿇고 식민 지배를 반성한 사실도 언급했다.

 

유관순 열사의 서훈 등급은 대통령이 의전상 추모일에 화환 하나 보내지 못하는 3등급이다. 유 열사의 서훈 등급 변경 근거를 담은 상훈법 개정안은 아직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유 열사에 대한 뉴욕타임스의 부고 기사는 죽비 소리와 같다. 조국을 위해 희생한 순국 선열을 제대로 주목하지도, 기억하지도 못하는우리에게 향하는 질타로 들린다. 그동안 유 열사를 역사적으로 저평가한 것은 뉴욕타임스가 아닌 우리 스스로가 아닌가.

 

뉴욕타임스는 지난 38일부터 세계 여성의 날 110주년을 맞아 매주 1명씩 역사적으로 주목할만한 업적을 남긴 여성들을 선정해, 그들의 삶을 조명하는 주목받지 못한(overlooked)’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역대 부고 기사가 지나치게 백인 남성 위주였다는 반성 차원이다.

 

유관순 열사에 앞서서는 소설 <제인 에어>를 쓴 작가 샬롯 브론테, 여성 최초로 무산소 에베레스트 등반에 성공한 산악인 앨리스 하그리브스, 쿠바 남성들의 비밀 연대를 꼬집은 판화 작가 벨키스 에이온 등이 소개됐다.

 

3. 아우내장터 독립선언서의 역사적 의의

 

 

아우내장터 독립선언서

2천만의 민족이 있고 3천리의 강토가 있고 5천년의 역사와 언어가 뚜렷한 우리는 민족자결주의를 기다리지 않고 원래 독립국임을 선포하노라.

민족의 대표 33인이 선봉이 되었으니 132천만 민중은 뒤를 이어 때를 잃지 말고 궐기하라. 분투하라. 인도 정의의 두 주먹으로 잔인무도한 일본의 총칼을 부수라.

정의의 칼날 앞에는 간악한 창과 방패가 굴복할 것이다.

하늘은 의로운 무리를 도울 것이며 귀신은 반드시 극악무도한 자를 멸할 것이니 동포여 염려할 것 없고 주저할 것 없이 오늘 정오를 기하여 병천 시장에 번득이는 태극기를 따르라. 모이라. 잃었던 국토를 다시 찾자. 기회를 놓치면 모든 복도 가느니 두 주먹을 힘차게 쥐고 화살같이 모이라.

반만년의 문화민족이 노예시 야만시 하는 일본의 굴욕을 감수할 것이랴.

 

기미년 41

구국동지회 대표 일동

 

 

아우내장터 항일독립선언서는 기미년 3.1일 서울 파고다공원에서 선언된 최남선(崔南善, 1890-1957) 선생과 한용운(韓龍雲, 1879-1944) 선사가 기초한 독립선언서가 너무 길고 난해하여 그것을 참고해 이백하 선생이 직접 초안, 미농괘지(美濃罫紙)에 수일간 철야 복사해 배부하고, 이백하 선생과 절친했던 조인원(趙仁元) 선생이 기미년 4.1일 오후 13시에 아우내 장터에서 낭독했다고 한다.

 

“2천만의 민족이 있고 3천리의 강토가 있고 5천년의 역사와 언어가 뚜렷한 우리는 민족자결주의를 기다리지 않고 원래 독립국임을 선포하노라.”로 시작되는 이 독립선언서는 536자에 불과해 짧지만 거사에 주민들을 많이 동원하기 위해 선동적인 언어가 많이 기술되어 있고, 우리 민족의 굳건한 항일독립의지와 기개가 실감나게 잘 나타나 있다.

 

최근 필자가 3.1운동을 전문적으로 조사 연구하고 있는 역사학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2018329일 현재까지 기미년 3.1운동 당시 지방에서 독립선언서를 자체 기초해 선언한 것으로 밝혀진 곳은 경상남도의 함안(咸安)과 하동(河東)을 비롯해 3-4곳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리하여 기미년 41일 아우내장터에서 선언된 이백하 선생이 기초한 독립선언서는 한국의 항일독립운동사상 아주 드문 사례로 그 역사적 의의가 매우 클 뿐만 아니라 지역의 정체성(正體性, identity)을 밝히는 데에 아주 중요한 향토 사료로 인식되고 있다.

 

4. 아우내장터 독립선언서 찾기 운동의 필요성

 

해마다 3.1절이 돌아오면 천안 독립기념관에서 기념식이 성대하고 엄숙하게 개최되고, 아우내장터에서 봉화제 행사가 활기차게 전개되고 있지만, 내 마음은 그저 착잡하기 그지없다.

 

왜냐하면 내가 지난 10여 년 동안 구국동지회 이름으로 발표된 아우내장터 독선선언서 원본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해 보았지만, 아직까지 원본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나는 신문과 방송은 물론 지역문화원과 시민단체, 국가보훈처와 광복회 등을 중심으로 아우내장터 독립선언서 원본을 찾기 위해 널리 아우내장터 독립선언서 찾기 운동을 전개하고, 국가 기록보존소를 직접 방문해 독립선언서 원본과 구국동지회에 대한 기록을 찾아보았지만 허사가 되고 말았다.

 

그래서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닌데, 협조해 주는 데가 아무데도 없어, 이제는 절망적이다. 설상가상으로 실증주의(實證主義, positivism) 사학을 신봉하는 강단사학자들이 아직까지 아우내장터 독립선언서 원본을 찾지 못하고, 구국동지회(救國同志會)에 대한 기록을 찾지 못했다는 이유로 독립운동가들과 그 후손들의 생생한 증언과 기록을 무시 내지 부정하고 있으니 정말로 안타까운 마음 이루다 형언할 수 없다. 심지어는 조작 가능성까지 들고 나와 나는 물론 항일독립운동가 후손들을 분노케 하고 있다.

 

만약 항일독립운동가들이 그런 나쁜 마음을 가슴에 품고 있었다면, 사랑하는 가족들마저 버리고 하나밖에 없는 자기의 소중한 생명을 조국에 받쳐가면서까지 이국 만리 만주벌판을 떠돌며 풍찬노숙하면서 항일독운동을 열렬히 전개했겠는가.

 

그런데 아직도 가느다란 한 가닥 희망은 있다. 천안, 병천, 진천지역 3,000여명의 성난 애국 시민들이 아우내장터에서 목이 터져라 항일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한 것으로 미루어 보아, 지금 어디엔가 살아남은 후손들이 아우내 장터 독립선언서 원본을 소장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나는 미력하지만 앞으로도 최선을 다해 전국적으로 <아우내 장터 독립선언서 원본 찾기 운동>을 전개하고, 구국동지회(救國同志會)의 실체를 밝히는 데에 배전의 노력을 경주할 각오이다.

 

그리고 필자가 역사학계에 최초로 제기한 천안역전 3·3독립만세운동에 대한 실체를 밝히고,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들을 발굴하는 데에도 남다른 사명감을 가지고 매진할 각오이다.

 

또한 항일독립운동가들의 유지를 이어받아 우리 조국이 당면한 국가적 난제인 환경오염과 파괴, 노사분규, 양극화, 분단과 통일, 핵문제, 인간소외 문제 등을 해결하는 데에도 열과 성을 다해 선진민주복지국가의 건설에도 나름대로 기여할 생각이다.

 

아무튼 전국의 열렬한 애국시민들이 기미년 41일 아우내장터 항일독립만세운동 제99주년을 계기로 하여 지금 전국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아우내장터 독립선언서 원본 찾기 운동>에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아우내장터 독립선언서 원본을 하루라도 빨리 찾아내 왜곡된 한국 독립운동사를 바로 잡아야 한다. 그리고 한국 독립운동을 연구하는 학자들로 하여금 구국동지회(救國同志會)의 실체를 밝혀내고, 2009년 천안시 병천면 병천리 일원에 조성된 아우내장터 독립만세운동 기념공원에 아우내장터 독립선언서 전문을 새겨 놓은 기념비를 건립해야 한다.

 

또한 해마다 31일 개최되는 봉화제 때에 아우내장터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학교교육과 사회교육을 통해 아우내장터 항일독립정신을 창조적으로 계승 발전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 1978년 충북도청에서 국민훈장 애족장을 받는 포암 이백하 선생.     © 아산톱뉴스

 

5. 아우내장터 독립선언서를 기초한 포암 이백하 선생의 생애와 업적

 

교육자이자 항일독립운동가인 포암 이백하 선생은 구한말인 1899417일 충남 천안시 동남구 성남면 석곡리 목골에서 태어났다. 그의 조부인 오당(珸堂) 이상수(李象秀, 1820-1882) 선생은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의 제자로 시문과 교육방법론에 능한 조선시대 말의 대학자로 추앙받던 인물이다.

 

기미년 31일 서울 종로구 파고다(탑골)공원에서 항일독립만세운동이 벌어진 것을 계기로 이 운동이 전국적으로 거세게 퍼져나가자 그의 가슴속에는 애국심이 활활 불타올랐다.

 

그는 천직인 오송보통학교 교사직마저 미련 없이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농업에 종사하면서 성남면의 유림 대표 자격으로 아우내장터 항일독립만세운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그는 먼저 동지들의 의견을 모아 종합적인 거사계획을 세우고 유관순 열사가 서울에서 은밀히 몸에 숨겨 가지고 온 파고다(탑골)공원 독립선언서를 참고, 536자의 쉬운 한글로 기록된 아우내장터 독립선언서를 구국동지회 명의로 초안하고 복사해 배포했다.

 

그리고 김구응(金球應), 김교선(金敎善), 김상철(金相喆), 김상훈(金相訓), 김용이(金用伊), 박제석(朴濟奭), 박봉래(朴鳳來), 유관순(柳寬順), 유중권(柳重權), 유중무(柳重武), 이순구(李旬求), 조만형(趙萬衡), 조병호(趙炳鎬), 조인원(趙仁元), 한동규(韓東奎), 홍일선(洪鎰善) 등과 함께 기미년 41일 아우내 장터에서 항일독립만세시위를 주도했다. 특히 그는 혈기왕성하고 애국심이 강한 유관순(柳寬順, 1902-1920) 열사를 잘 지도해 아우내장터 독립만세시위를 성공적으로 이끌었으나 결국 일제에 검거돼 16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1945815일 광복 직후 그는 중등교사로 초빙을 받아 중등교육계에서 수많은 제자를 양성하면서 항일독립사상 고취 함양에 진력했다.

 

실제로 그는 명문교인 충주중, 청주고, 청주여중, 서울의 서울여상에서 오래 동안 재직하면서 훌륭한 제자들을 많이 양성했다. 충주중 재직 시에 배출한 제자로는 문학평론가 유종호(柳宗鎬)와 충청북도 부지사를 역임한 홍순기 등을 들 수 있다. 청주고 재직 시에 배출한 제자로는 내무장관과 국회 부의장을 역임한 김종호(金宗鎬), 농수산부장관과 정부장관을 역임한 정종택(鄭宗澤), 14대 충주시장을 역임한 이상용, 동국대 총장을 역임한 문학평론가 홍기삼(洪起三) 문학박사 등을 들 수 있다.

 

 

청주고 교가

작사 이백하

작곡 김하경

 

<1>

높은 갈문을 찾아 모여든 우리

어버이 스승님의 뜻을 받들어

꾸준히 갈고 닦아 힘을 기르니

보아라 청고는 젊은이 등불

 

<2>

무궁화 묵은 그루 다시 북돋고

옛 나라 새 목숨을 가다듬어서

반만년 한 배의 길 힘써 지키니

보아라 청고는 청고는 나라의 방패

 

  

특히 그는 청주고 교가를 작사하고 국어 시간에 틈나는 대로 자기의 항일독립운동 체험담을 유관순 열사와 관련시켜 들려주었으며 독립선언서를 가르칠 때에는 반드시 한복 두루마기를 입고 교단에 서서 학생들에게 애국심을 불러일으켰다고 한다.

 

이처럼 포암 이백하 선생은 전주이씨 명문가에서 태어나 일평생 항일독립만세운동과 초·중등교육에 헌신하다가 1985년에 87세를 일기로 타계했고 그의 유해는 지금 대전 국립묘지에 묻혀 있다.

 

포암 이백하 선생은 충청지역의 항일독립운동과 초등과 중등교육계에 많은 업적을 남긴 애국지사로 19901226일 국민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다. 그러나 아직까지 아우내장터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던 구국동지회의 실체를 밝히지 못하고 이 선생이 기초한 아우내장터 독립선언서 원본을 찾지 못해 그가 한국의 항일독립운동사에 남긴 위대한 업적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참고문헌>

1. 이우명, “유관순 만세운동 독립선언서 따로 있다", 연합뉴스, 2007.4.3일자.

2. 신상구, "항일독립운동가 이백하 선생의 생애와 업적", 한국문화원연합회, 23회 전국향토문화공모전 수상집, 2008. ()계문사, 2008.11.25.

3. 신상구, "아우내장터 독립선언서의 역사적 의의와 창조적 계승 방안", 중앙매일신문, 2016.3.31일자. 16.

4. 김예지, "아우내장터 독립선언서 천안서 자체제작 - 신상구씨, 이백하 선생 기초 주장...10년째 원본찾기", 대전일보, 2016.4.1일자. 20.

5. 이해미, "4.1아우내장터 독립선언서 포암 이백하 선생을 아십니까?", 중도일보 인터넷판, 2016.4.1일자.

6. 신상구, “아우내장터 독립선언서 기초한 포암 이백하 선생의 생애와 업적”, 동양일보, 2016.4.4일자.

7. 신상구, “아우내장터 독립만세운동 98주년을 기념하며”, 중부매일, 2017.3.31일자. 19.

8. 신상구, “아우내장터 항일독립선언서 원본을 찾습니다.”, 천안일보, 2017.4.1일자.

9. 심윤지, “뉴욕타임스 메인에 실린 유관순 열사 부고 기사”, 경향신문, 2018.3.30일자.

10. 장지영, “유관순 열사, 98년 만의 부고 - NYT ‘간과된 여성들주제로 일제 항거한 활동가소개”, 국민일보, 2018.3.30일자. 6.

11. “유관순 열사, 제대로 평가받고 있나”, 중도일보, 2018.4.2일자. 23. 

 

 

<필자 소개>

▲ 신상구 박사.     © 아산톱뉴스

 

-신상구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국학박사, 향토사학자, 시인, 문학평론가)


- 1950년 충북 괴산군 청천면 삼락리 63번지 담안 출생


- 아호 대산(大山) 또는 청천(靑川), 본관 영산신씨(靈山辛氏) 덕재공파(德齋公派)


- 백봉초, 청천중, 청주고, 청주대학 상학부 경제학과를 거쳐 충남대학교 교육대학원 사회교육과에서 한국 인플레이션 연구(1980)’로 사회교육학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UBE) 국학과에서 태안지역 무속문화 연구(2011)’로 국학박사학위 취득


- 한국상업은행 종로구 재동지점에 잠시 근무하다가 교직으로 전직하여 충남의 중등교육계에서 354개월 동안 수많은 제자 양성


- 주요 저서: <대천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아우내 단오축제>, <흔들리는 영상>(공저시집, 1993), <저 달 속에 슬픔이 있을 줄야>(공저시집, 1997) 4.


- 주요 논문: ‘항일독립투사 조인원과 이백하 선생의 생애와 업적’, ‘한국 여성교육의 기수 임숙재 여사의 생애와 업적’, ‘태안승언리상여 소고’, ‘대전시 상여제조업의 현황과 과제’, ‘천안지역 상여제조업체의 현황과 과제’, ‘한국 노벨문학상 수상조건 심층탐구93


- 수상 실적: 천안교육장상, 충남교육감상 2, 통일문학상(충남도지사상), 국사편찬위원장상, 한국학중앙연구원장상, 자연보호협의회장상 2, 교육부장관상,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문학 21> 시부문 신인작품상, <문학사랑>·<한비문학> 문학평론 부문 신인작품상, 국무총리상, 홍조근정훈장 등 다수


- 대전 <시도(詩圖)> 동인, 천안교육사 집필위원, 태안군지 집필위원, 천안개국기념관 유치위원회 홍보위원, 대전문화역사진흥회 이사 겸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 보문산세계평화탑유지보수추진위원회 홍보위원, 동양일보 동양포럼 연구위원   

 

기사입력: 2018/04/02 [16:50]  최종편집: ⓒ 아산톱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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