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미년인 1919년에 설치된 대전형무소는 서울 이남지역의 독립운동가와 사상범을 수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일제강점기에 안창호, 여운영, 김창숙 등 수많은 애국지사와 독립운동가들이 수감됐다. 대전형무소는 1923년에 대전형무소로 이름이 바뀌었고, 1924년에 와서야 완공되었다.
▲ 1919 대전감옥소 전 포스터에 실린 대전감옥소 모습(대전마케팅공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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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후에도 형무소, 교도소로 사용되던 이곳은 1961년에 대전교도소로 이름이 바뀌었다가 지난 1984년, 교도소가 진잠으로 이전하면서 헐리게 됐다.
지금은 망루 1개, 우물 1개만 남아 있는데, 망루는 2001년에 대전 문화재 자료 제47호로 지정됐다.
대전 동구 낭월동 13번지 골령골은 뼈와 영혼이 산처럼 쌓인 민간인 집단학살산골짝이로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6월 28일부터 1951년 초까지 3차에 걸쳐 대전형무소 수감자와 지역주민 등 최소 1,800명에서 최대 7,000명이 집단학살당한 역사적인 현장이다.
6·25 한국전쟁 발발 당시 대전형무소에는 4,000여 명이 수감돼 있었다. 한국정부는 이들 중 여순사건과 제주 4·3 관련 수감자 등 2,000여 명을 정치·사상범 즉, 좌익으로 분류하고 정당한 재판 절차 없이 집단학살했다.
▲ 주한미국대사관 육군무관 밥 에드워드((BOB E. EDWARDS) 중령이 1950년 6월말에서 7월 초에 촬영한 대전 산내 골령골 민간인 집단학살 현장 사진 4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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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집단학살은 6.25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나흘째 되던 1950년 6월 28일부터 사흘 동안 이뤄졌다. 대전형무소에 수감된 여순사건 및 제주4.3사건 관련 수감자와 예비검속으로 체포돼 임시 수감된 보도연맹원, 요시찰 대상자 등 1,400여 명이 군·경에 의해 산내 골령골로 끌려가 무참히 죽임을 당했다. 두 번째 집단학살은 그해 7월 3일부터 3일 동안 제주4.3사건 관련 수감자를 비롯한 재소자 1,800-2,000명이 끌려와 학살됐다. 세 번째 집단학살은 7월 6일부터 17일까지 서울 영등포와 서대문 형무소, 수원형무소에서 가석방돼 열차를 타고 내려오다 대전역에서 연행된 사람들과 공주·청주 형무소의 일반 재소자 및 서산경찰서 보도연맹원 등으로 대전형무소에 수감돼 있던 3,700여 명이 끌려와 학살됐다.
주한미국대사관 육군무관 밥 에드워드(BOB E. EDWARDS) 중령이 1950년 9월 23일 작성한 A-1 등급 보고서인 ‘한국에서의 정치범 처형’에는 ‘서울이 함락되고 난 뒤 형무소 재소자들이 북한군에 의해 석방될 가능성을 방지하고, 공산당 우두머리와 좌익극렬분자를 처단한다’는 것이 학살의 명분이라고 기록돼 있다
가해자인 충남지구 방첩대(CIC), 제2사단 헌병대, 대전형무소 교도관, 지역 경찰 등이 30m에서 180m에 이르는 각각의 구덩이 8곳을 연결한 길이가 무려 1km에 달하는 골령골에서 민간인 집단학살을 자행해 골령골은 ‘세상에서 가장 긴 무덤’이 되었다.
▲ 골령골 민간인 학살 현장에 서있는 안내표지판. 산골짝 입구에서 안쪽으로 1km에 걸쳐 여덟 군데에 학살 암매장지가 있다. © 대전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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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M1소총은 형무소 특별 경비대, 카빈은 경찰, 45구경 권총은 헌병대가 사용해 좌익 인사들을 무차별 집단사살했다.
그런데 대전 산내 골령골 민간인 집단학살 사건의 현장 지휘 책임자였던 심용현(沈龍鉉, 당시 대전 2사단 헌병대 4과장 중위), 정재환(石堂 鄭在煥, 대전지방검찰청 검사장), 송요찬(宋堯讚, 2사단 헌병사령관, 대령), 대전교도소 특별경비대 이준영 교도관 등은 처벌받지 않고 오히려 우대받아 심용현은 중령 예편 후 성신여대 총장과 성신학원 이시장을 역임했고, 송요찬은 육군중장으로 예편하고 대한민국 내각수반을 역임했으며, 정재환은 법무부 차관을 역임하고 동아대를 설립해 부와 명예를 누리며 행복하게 잘 살다가 죽었다. 반면에 골령골 민간인 집단학살 사건 유가족들은 오랫동안 좌익의 집안이라는 세상의 오해와 차별로 숨죽이며 상처를 쉬이 드러내지 못했다. 대전교도소 특별경비대 이준영 교도관은 5급 교도관으로 퇴임하고, 한국정부와 북한군이 대전형무소에 수감되었던 좌우익 인사들을 집단살해한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데에 많이 기여했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46년간 터부시됐던 골령골 민간인 학살사건이 세상에 본격적으로 드러난 것은 1999년에 미국의 기밀 문건이 해제되면서 부터이다. 1950년 9월, 미군 중령 밥 에드워드(BOB E. EDWARDS)는 ‘한국의 정치범 처형’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와 18장의 사진을 본국으로 전송했다. 미군이 촬영한 사진에는 골령골에서 사람들이 대한민국 군경에 의해 총살, 구덩이에 파묻힌 모습이 낱낱이 기록돼 있었다. 또한 밥 에드워드(BOB E. EDWARDS) 중령의 보고서는 이 처형이 한국 최상부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기록해 충격을 던졌다.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 발발 직후에 우리 군 헌병대와 경찰, 우익단체에 의해 자행된 산내 골령골 민간인 집단학살은 추모는 고사하고 진상조사조차, 사실 인정조차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 이유는 학살지가 깊은 산골짜기로 세월이 흐르면서 많이 유실된 것으로 추정되고, 유해가 묻혔다고 추정되는 지역은 도로로 포장되거나 사유지이기 때문이다.
한편 인민군이 대전을 점령하고 대전형무소를 인민 교화소로 사용하면서 대전 충남 일대 공직자와 교사, 청년단원, 우익인사 등 6,800여 명이 대전형무소에 수감됐었다. 인천상륙작전으로 대전이 유엔군에 탈환될 상황에 처하자 인민군이 후퇴하기 직전에 1,300여 명의 양민을 포함 6,000여 명을 무참하게 집단학살했다. 우익정치인 1,557명은 4개의 우물에 던져 집단학살해 생매장했다. 인민군이 대전형무소에서 철수해 퇴각하자 4개의 우물에서 우익정치인 시신 171구를 인양했고, 나머지 유해는 방치한 것으로 추정된다.
2007년에 와서야 관련법이 제정되어 비로소 진실화해위원회 주도로 골령골의 좌익인사 유해발굴이 시작됐으나 34구를 발굴하는 데 그쳤다. 2015년에는 민간인으로 구성된 공동조사단이 제1학살지에 대한 공동조사를 벌여 18구의 유해를 추가로 발굴했다. 그리고 5년만인 2020년 9월 20일 제1학살지에 캠프가 설치됐고, 9월 25일부터 대전 동구청과 공동조사단의 공동주최로 본격적인 유해 발굴 작업이 시작됐다.
작업일 기준으로 40일 동안 진행된 유해 발굴은 제1학살지에 집중해 11월 21일에 종료되었다. 2020년 유해 발굴 작업을 통해 234구의 유골이 수습되었다.
2021년에도 6월 14일(월)부터 11월까지 시굴조사 8434㎡, 정밀조사 1000㎡를 발굴할 예정이다. 발굴된 유골은 2022년 국가단위 추모위령시설이 골령골에 건립될 때까지 세종시 추모의집에 임시로 안치될 예정이다.
그런데 7000여 명으로 추산되는 희생자 중 그나마 신원이 확인된 사람은 508명에 불과하다. 그리고 대한민국정부가 지난 70여 년간 골령골 민간인 집단학살 현장을 방치하는 바람에 농사와 난개발로 이미 3분지 1의 유골이 유실되어 완전한 유해 발굴이 불가능하고, 국가보훈처가 유가족들에 대한 피해 보상을 제때에 잘 해주지 않아 유가족들은 지금 눈물로 세월을 보내며 분통을 터트리고 있다고 한다.
그래도 전미경 대전산내사건희생자 유족회장은 지난 2021년 4월 22일 희생자들을 추모하고자 산내 골령골 유해 발굴 현장에서 위령제를 올렸다. 허태정 대전시장은 위령제 추도사에서 산내 골령골 민간인 집단학살사건 희생자 유해 발굴과 평화공원 조성을 적극 지원키로 약속했다. 평화공원 조성 사업은 2020년 국제설계공모를 거쳐 현재 설계용역 중이다. 유해발굴이 완료되는 내년 7월에 착공해 2024년 12월까지 준공을 목표로 추진하고 있다.
▲ 2009년 7월 1일 대전기독교연합봉사회관에서 올린 대전 산내 골령골 민간인집단학살사건 희생자 위령제. ©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 공식블로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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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허태정 시장은 “역사적 실체와 진실이 밝혀지고, 희생자와 유가족의 명예와 한이 회복되도록 노력하겠다”며, “유해발굴 추모관 건립도 적극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충남 아산시 배방면에서도 한국전쟁 당시 배방읍 수철리 설화산 자락의 한 야산 펴금광에서 온양경찰서 경찰과 치안대 등에 의해 끌려온 좌익인사들이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집단으로 총살되었다고 한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07년 1월부터 2년 동안 아산 부역혐의 희생 사건을 조사하고 조사보고서를 작성해 발표했다. 그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1·4 후퇴 시기 배방면 창고에 감금됐던 200-300명의 주민들은 중리3구 정미소(구 금방앗간)로 옮겨져 살해된 후 폐금광에 매장되거나 폐금광에서 살해됐다고 한다. 그런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09년 5월 아산 부역혐의 희생 사건을 민간집단희생으로 진실규명 했다.
한편 한국전쟁 시기인 1950년 9월 말부터 1951년 1월 초까지 인민군 점령시기 부역했다는 혐의와 그 가족이라는 이유로 온양경찰서 소속 경찰과 대한청년단, 청년방위대, 향토방위대 등에 의해 배방산 방공호와 폐금광, 염치면 대동리, 선장면 군덕리, 탕정면 용두리1구, 신창면 일대 등으로 강제 연행되어 집단 살해되었다. 과거사위는 아산 부역혐의 사건으로 숨진 민간인 규모를 800여 명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유해발굴 결과 신원이 확인된 희생자는 77명에 불과했다. 그리하여 아산시는 2015년 제정한 '아산시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추모에 관한 조례'를 근거로 조사결과에 따라 1억여 원의 예산을 들여 지난 2018년 배방읍 폐금광과 2019년 염치읍 백암리 등에서 유해발굴 사업을 진행해 215구의 유해를 세종시 ‘추모의 집’에 안치한 바 있다.
그 후 2020년 4월에 공모사업자로 선정된 사단법인 한반도통일역사문화연구소(이하 한통연)가 6.25한국전쟁 당시 아산에서 희생된 민간인들로 인민군점령시기 적대세력에 의한 희생자들과 수복 이후 부역혐의 희생자들을 대상으로 민간인 학살 전수조사를 시행했고, 11월 6일부터는 노용석 부경대 교수팀이 아산 배방읍 외 4곳을 대상으로 유해 발굴 사업을 실시했다.
2020년 10월에 완료된 전수조사결과 어린이와 노약자들이 상당 수 포함된 희생 민간인은 총 3천명으로 추정되고 집단희생 장소는 각 읍면마다 적게는 2~3곳에서 많게는 10여 곳으로 총 30여 곳으로 조사됐다.
노용석 부경대 유해발굴팀은 처형 당일 학살 과정을 목격한 목격자나 현장에서 시신을 수습한 주민들과, 1980년대 이후 다른 사업으로 유해 매장지를 굴착하다가 유해를 목격한 이들의 증언을 토대로 신창면 1곳, 염치읍 1곳, 배방읍 1곳, 도고면 1곳, 선장면 1곳에서 유해를 발굴했다.
▲ 충남 아산시 민간인 집단학살 유해 발굴 개토제. © 통일뉴스 객원기자 임재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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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2월에 출범한 진실화해위가 진상규명 신청을 받은 1만 1112건 가운데 민간인 희생사건이 9374건으로 88.9%를 차지했다. 그리고 2007년 전국 매장 추정지 168곳 가운데 발굴 가능한 59곳을 선정했지만 예산과 인력 부족으로 이곳도 다 조사하지 못했다. 수많은 집단 희생자 유해가 전국 곳곳에 방치돼 있는 것이다. 특히 도시개발 등으로 매장 추정지가 갈수록 사라지고 있어 시각을 다투는 상황이다.
좀 때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이라도 국가·지방자치단체·시민단체(한국전쟁유족회, 4.9통일평화재단, 민족문제연구소,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민주화운동정신계승국민연대, 장준하특별법제정시민행동, 포럼진실과정)·유족회가 협력하여 국가의 불법적인 민간인 집단학살 진상을 파악하고 가해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벌해 응분의 대가를 치르도록 하며 피해자에게는 경제적인 보상을 충분히 해야 한다.
그리고 민간인학살 배·보상 특별법 제정, 전국 민간인 집단학살사건 희생자 유해 발굴완료와 위령제 매년 개최, 유해발굴 추모관 건립과 평화공원 조성, 가족관계등록부 정정을 통한 희생자 명예회복, 이념·인권·안보·평화통일 교육 강화, 국가의 불법적인 민간인 집단학살 사건 재발 방지 대책 마련 등 다각적인 국가 보훈정책을 수립하고 적극적으로 실시하여 안전하고 평화로운 사회와 통일국가를 이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참고문헌>
1. 정은주, “[2010 한국전쟁 60년 화해의 원년] (3·끝) 화해의 물꼬를 트자”, 서울신문, 2010.7.1일자. 14면.
2. 윤평호, “한국전쟁 아산 민간인 집단 학살 추정 매장지 첫 발견”, 대전일보, 2017.3.17일자.
3. 이종익, “아산지역 한국전쟁 민간인집단학살 추정지서 '3명의 유해' 발견”, 뉴시스, 2017.11.19일자.
4. 임재근, “충남 아산 민간인 학살 유해 발굴 22일 시작 : 한국전쟁기 부역혐의자 200~300명 희생 추정”, 통일뉴스, 2018.2.22일자.
기자명 아산=임재근 객원기자 입력 2018.02.22 16:32 수정 2018.02.22
5. 유명환, “아산시, 한국전쟁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실시 : 지난 11월 6일부터, 배방읍과 신창면 등 5곳에서 진행”, 충남일보, 2020.11.8일자.
6. 서경석, “아산시, 한국전쟁 아산지역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추진”, 동양일보, 2020.11.8일자.
7. 김준호, “ '6·25 전쟁 민간인 학살' 대전 골령골서 희생자 진혼제”, 연합뉴스, 2021.4.22일자.
8. 대전광역시 동구청, “대전에 있는 세상에서 가장 긴 무덤의 비밀을 아시나요? <산내 곤룡골 민간인 희생사건> 이야기”, 대전동구청 공식 홈페이지, 2021.6.14일자.
9. 김영규, “'다큐 인사이트' 대전 산내 골령골 민간인 학살 사건 조명”, 국제뉴스, 2021.6.17일자.
10. 전희진, “민간인 학살 대전 골령골, 정부 보고서 ‘익명’의 정체는”, 국민일보, 2021.6.2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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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신상구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국학박사, 향토사학자, 시인, 문학평론가)
- 1950년 충북 괴산군 청천면 삼락리 63번지 담안 출생
- 아호 대산(大山) 또는 청천(靑川), 본관 영산신씨(靈山辛氏) 덕재공파(德齋公派)
- 백봉초, 청천중, 청주고, 청주대학 상학부 경제학과를 거쳐 충남대학교 교육대학원 사회교육과에서 ‘한국 인플레이션 연구(1980)’로 사회교육학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UBE) 국학과에서 ‘태안지역 무속문화 연구(2011)’로 국학박사학위 취득
- 한국상업은행 종로구 재동지점에 잠시 근무하다가 교직으로 전직하여 충남의 중등교육계에서 35년 4개월 동안 수많은 제자 양성
- 주요 저서: <대천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아우내 단오축제>, <흔들리는 영상>(공저시집, 1993), <저 달 속에 슬픔이 있을 줄야>(공저시집, 1997) 등 4권.
- 주요 논문: ‘항일독립투사 조인원과 이백하 선생의 생애와 업적’, ‘한국 여성교육의 기수 임숙재 여사의 생애와 업적’, ‘태안승언리상여 소고’, ‘대전시 상여제조업의 현황과 과제’, ‘천안지역 상여제조업체의 현황과 과제’, ‘한국 노벨문학상 수상조건 심층탐구’ 등 93편
- 주요 발굴 : ▲민촌 이기영의 천안 중앙시장 3·3항일독립만세운동 기록(2006) ▲포암 이백하 선생이 기초한 아우내장터 독립선언서(2007)
- 수상 실적: 예산군수 감사장, 대천시장상(2회), 천안시장상(2회), 천안교육장상, 충남교육감상(2회) 통일문학상(충남도지사상), 국사편찬위원장상, 한국학중앙연구원장상, 자연보호협의회장상(2회) 교육부장관상(푸른기장),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문학 21』시부문 신인작품상,『문학사랑』·『한비문학』 문학평론 부문 신인작품상, 국무총리상, 홍조근정훈장 등 다수
- 칼럼/기고 활동: 동아일보·중앙일보·조선일보·경향신문·한국일보·서울신문·서울일보·신아일보·문화일보·전국매일신문·시민신문·천지일보 등 중앙 일간지, 대전일보·충청일보·충청투데이·중도일보·동양일보·금강일보·중부매일·충남일보·중앙매일·충청타임즈·충청매일·대전투데이·충청신문·충북일보·우리일보·시대일보·중부일보 등 지방 일간지, 충남시사신문·천안일보·충남신문·천안투데이·아산투데이·아산시사신문·예산신문·태안신문·태안미래신문·보령신문· 내포시대·진천신문·증평신문·옥천신문 등 주간신문, 아산톱뉴스·천안일보·디티뉴스·대전뉴스·충청뉴스·충청뉴스인·시티저널·충북인뉴스·굿모닝충청·예산뉴스 무한정보·괴산타임즈·코리안스프릿 등 인터넷신문 등에 수백편의 칼럼 기고.
- 방송활동: 30년 간 우리 역사 바로 세우기 운동·환경운동 전개, KBS 중앙방송국 라디오 <논술 광풍>프로 출연, STB 상생방송 <홍범도 장군> 프로 출연, KBS 대전방송국·MBC 대전방송국·CJB 청주방송국 라디오 <아우내장터 독립선언서 발굴> 프로 출연.
- 대전 <시도(詩圖)> 동인, 한국지역개발학회 회원, 충남민주시민교육연구회 회원, 한국사회과교육연구회 회원, 한국국민윤리교육회 회원, 천안향토사 연구위원,『천안교육사 집필위원』,『태안군지』집필위원, 천안개국기념관 유치위원회 홍보위원, 대전문화역사진흥회 이사 겸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 보문산세계평화탑유지보수추진위원회 홍보위원, 동양일보 동양포럼 연구위원, 통합논술 전문가, 평화대사, (사)대한사랑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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