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회원가입
전체기사보기
편집  2018.11.13 [03:10]
톱피플
공지사항
자유게시판
부음
혼인
행사
개업
부동산 삽니다
중고차 삽니다
사고팔고 삽니다
자유기고
토론마당
사랑방
모임
아이들방
회사소개/인사말
개인정보취급방침
윤리강령
기자윤리실천
기자회원 약관
청소년보호정책
지역신문의 미래
기사제보
HOME > 톱피플 >
美 태권도의 대스승 준 리 "나는 아산사람이다"
준리태권도 총재 이준구를 만나다
 
박성규 기자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rss band

▲ '준리태권도' 이준구 총재.     © 아산톱뉴스

'미국 태권도의 대스승', '미국 태권도의 대부', '미국 태권도의 아버지' 등 태권도에 있어 최고를 나타내는 수많은 수식어를 갖고 있는 '준리태권도' 이준구 총재(미국명 준 리·Jhoon Rhee).

미국 국회의사당 안에 최초로 태권도 클럽을 설치하고, 전직 대통령뿐만 아니라 상·하 양원 의원 300여 명에게 태권도를 지도하면서 미국 내에 태권도의 뿌리를 내렸다.

또 2000년 미국 정부가 발표한 '미국 역사상 가장 성공한 이민자 203인'의 한 명으로 아인슈타인, 키신저 등과 함께 선정됐으며, 미국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렸다. 뿐만 아니라 태권도 보호 장구를 개발·보급해서 겨루기를 가능케 함으로써 88서울올림픽을 계기로 태권도가 올림픽 경기종목에 채택되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미 국방부 관리 모임 태권도 지도자, 미 재무성 비밀 국방부에서 태권도 지도자, 미 해병대 백병전 대비 태권도 지도, 전 미국 레이건 대통령의 체육·교육 특별고문, 전 미국 부시 대통령 체육·교육 특별고문, 미국 정부 'Asian American 정책' 국가위원회 임원, 미국 대통령 '아·태 정책자문원회' 임원 등을 역임한 경력도 갖고 있다.

그의 명성은 미국에서 그치지 않는다. 구 소련시절부터 현재까지 러시아에 65개의 태권도장을 설립했으며, 옐친 전 러시아 대통령의 '정치인 훈련양성소' 체육·교육 특별고문과 구 소련 '국회분과위원회' 체육·교육 특별고문을 역임하는 등 태권도로 구 소련 시절부터 현재까지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우리에게는 권투 전 헤비급 세계챔피언 무하마드 알리에게 일명 '액큐 펀치'라고 불리는 주먹 쓰는 법을, 무술인이자 영화배우인 이소룡에게는 발차기를 가르친 것으로 유명한, 태권도에 있어서는 불세출의 인물이다.

이런 보기조차 힘든, 세계가 존경하는 이준구 총재를 필자가 만나 인터뷰를 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됐다.

▲ 이준구(왼쪽) 총재와 필자(오른쪽).     © 아산톱뉴스

미국 태권도의 대스승 '준 리'를 만나다

지난 9월6일 오전, 서울 여의도 소재 한 호텔에서 이준구 총재를 만나기로 약속했다. 이날 인연의 끈은 그가 아산에서 태어난 '아산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맺어졌다.

그가 아산사람이라는 것을 모르는 아산시민들이 필자를 비롯해 의외로 많다. 어디에 가서도 자랑으로 여길만한 사실인데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이러한 사실을 많은 아산시민들에게 알리고 싶어 인터뷰를 진행하게 됐다.

여간해서는 만나기 힘든 사람이었지만 지인의 도움으로 이 총재를 만날 수 있었다. 그도 자신이 태어난 고향에서 온 언론인이라서 그런지 만남에 선뜻 응해준 것으로 전해 들었다.

필자는 그의 명성은 익히 알고 있던 터라 다소 긴장이 되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너무 기쁘기도 했다. 텔레비전을 통해서만 보던 그를 실제로 볼 수 있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영광이었다.

더욱이 지금 이 총재는 투병 중에 있어 웬만하면 만나달라고 하기가 어려운 상태였다. 그런데도 필자의 인터뷰 요청에 선뜻 응해준 것에 감사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한국에 들어온 것도 병 치료를 위한 것이었다.

숙소에 들어서자 작은 체구의 이준구 총재가 반갑게 맞아 줬다. 언뜻 보기에도 몸을 추스르기가 힘들어 보였지만 얼굴에 미소를 잃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이 보였다. 필자를 배려해 고통을 참고 있는 것이 역력해 보였다.

이 총재에게 조금이라도 실례를 덜하기 위해 인터뷰를 빨리 끝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잠깐의 인사를 나눈 뒤 곧바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아산에서 5남매 중 셋째로 태어나다

이 총재가 태어난 곳은 충남 아산시 염티면(현재 염치읍) 산양리다.

일제 강점기인 1932년 1월7일, 부친 이진훈 씨와 모친 홍계임 사이에서 5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다.

앞서 두 딸을 낳았던 부모는 이 총재를 임신했을 때 '이번에는 아들을 낳아야 하는데' 하고 많은 걱정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다행히도 아들이 태어났다. 당시에는 아들을 선호하던 시절이다 보니 두 딸 뒤에 얻은 아들인 이 총재가 얼마나 귀여움을 받았을지 짐작이 간다.

이런 짐작에 이 총재는 학자 집안이던 집안의 분위기로 인해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예절을 중요시 여겼다"며, 이로 인해 "귀여움만 받고 자란 것이 아니라 엄격한 인성 및 예절교육을 받았다"고 말한다.

▲     © 이준구 저서 트루토피아에서 촬영

친할아버지는 조선왕조의 최고학부였던 서울의 성균관에서 박사벼슬을 받았고, 외할아버지도 박사였다고. 이로 인해 마냥 재롱만 부리고 살진 못했다고 한다.

그의 태몽은 아버지가 꿨다고 한다. '높은 담으로 둘러싸여 있는 궁 앞에서 호랑이가 큰소리로 소동치는 것을 보고 깨어났다'고 한다. 언뜻 듣기에도 범상치 않은 태몽이다. 추후 이준구 총재가 세계적인 인물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암시한 듯.

이후 이 총재는 경기도 수원에서 회사원으로 근무하던 아버지 때문에 부모와 떨어져 아산에서 7살 때까지 살았다. 이 총재는 어린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이 때 있었던 여러 일화를 아직도 기억하며 세세히 아산을 추억하고 있었다.

그는 오랜 기다림 끝에 얻은 아들이다 보니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살았을 것으로 보이던 어린 시절 큰 교훈을 얻으며, 인생의 전환점을 맞은 중요한 일화를 전했다.

그의 나이 5살 때다. 당시 글방(현재 유치원)에 들어갔다. 할아버지는 그에게 글방에서 공부할 책 한 권(천자문)을 줬다.

하루는 주의 없이 놀다가 책을 운동장에 놓고 왔다. 집에 오니 할아버지는 책을 가져와 배운 것을 읽어보라고 주문했다. 그는 친구에게 책을 빌려줬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때 놀랍게도 할아버지는 이 총재가 잃어버린 그 책을 보여줬다고 한다.

어린 나이에 난생 처음 한 거짓말을 들켰으니 얼마나 무서웠겠는가?

그의 할아버지는 부주의로 책을 잃어버린 것과 거짓말을 한 두 가지 이유로 벌을 받아야 한다고 하며 회초리를 들었다고 한다. 5살의 어린 아이였지만 자신이 잘못했다는 것을 알기에 종아리를 때리는 할아버지에게 나쁜 마음은 없었다고 한다.

이후 할아버지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준구야, 네가 거짓말하고, 속이거나, 도둑질 할 때 하나님께서 지켜보고 계신다는 것을 모르느냐? 네가 좋은 일할 때도 하나님께서는 보고 계신단다. 준구야, 내 말 알겠느냐?"고 물어 그는 "네. 알겠습니다."하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는 이때 "할아버지의 말이 너무나 충격적이어서 인생의 큰 교훈이 됐다"며 "할아버지의 그 말씀을 듣는 순간이 내 성품을 기르는데 가장 중요한 순간이었다"고 강조한다.

1년 후 이 총재는 국민학교(현재 초등학교) 진학을 위해 아산을 떠나 부모가 있는 경기도 수원으로 향했다. 그는 이후 수원 신풍초등학교와 서울 동성중·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 총재가 수원 태생인 것으로 알고 있기도 하다.

이후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방학기간 동안 아산에 내려와 할아버지 댁에서 지냈다.

16살 이준구, 태권도를 만나다

▲     © 이준구 저서 트루토피아에서 촬영

이준구 총재는 어려서부터 많이 맞고 다녔다. 자신보다 어린 여자아이에게도 맞고, 힘센 학생들로부터도 맞았다.

"내가 태권도를 열심히 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해준 셈이다. 이것이 나를 태권도의 길을 택하게 한 것이다."

그는 16살 때이던 1947년 9월, 이원국 대스승이 개관한 청도관에서 당수도(현재 태권도)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언젠가는 최고의 태권도 사범이 될 결심을 마음 깊이 새겼다.

처음에는 보수적인 그의 아버지가 태권도를 깡패들이나 하는 것으로 여겨 반대했지만 작은아버지의 설득으로 어렵게 허락을 받아낼 수 있었다고 한다. 여러 환경을 봤을 때 그가 태권도를 배우는 것은 쉽지가 않았고, 그런 와중에 그가 태권도를 접하게 된 것은 어쩌면 숙명이었는지도 모른다.

소년 이준구, 미국을 마음에 품다

▲     © 이준구 저서 트루토피아에서 촬영

중학생 때였다. 그는 중·고등학생들이 봐서는 안 되는 영화를 우연치 않게 보게 됐다. 마릴린먼로 주연의 영화였다. 영화를 보면서 "이렇게 아름다운 많은 여자 배우를 본 적이 없었다"는 그는 그날 저녁부터 미국의 금발 미인과 결혼하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어떤 과목보다도 영어를 열심히 했으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영어를 제일 열심히 했고, 잘했다.

그렇게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낸 그는 1950년 동국대학교에 진학했다. 동국대를 선택한 것은 그 당시 유일하게 당수부가 있었던 학교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채 4개월을 못 다니고 말았다. 6.25전쟁이 터진 것이다.

이 총재는 당시 1학년 부회장을 맡고 있었는데, 부회장의 책임 중 하나가 1학년 학생들에게 필요한 전차승차권을 단체로 사기 위해 매월 돈을 거두는 것이었다.

이렇게 거둔 돈이 요즘 가치로 50만 원 정도 있었는데, 그는 본의 아니게 이 돈을 피난자금으로 썼다고 한다. "지금까지도 미안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고 말하며 당시 친구들에게 용서를 구했다.

꿈에도 그리던 미국생활의 시작

▲     © 이준구 저서 트루토피아에서 촬영

이후 이 총재는 군에 입대하게 됐고, 간부후보생 지원을 했으며, 졸업 후 육군항공대를 지원해 비행기 정비와 기상훈련을 받게 됐다. 훈련이 끝난 다음 조종사 후보생들에게 비행기 정비와 기상을 가르치는 교관생활을 2년 6개월 쯤 했을 때 그의 오랜 꿈이던 미국에 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미국에서 정비훈련을 받는 코스의 응시자를 모집한다는 공문이 들어온 것이다.

그는 응시했고, 최고 영어점수를 받아 50명 중 3명에 선택됐다. 미국에 간 그는 3개월 코스의 영어학교를 졸업한 뒤 샌 마르코스 게리공군부대에서 훈련을 받은 후 한국으로 돌아왔다.

귀국 후 1년 남은 군 복무기한을 마친 그는 미국에 있을 당시 알게 된 목사 부부의 재정보증으로 1957년 유학생으로 다시 미국에 발을 디뎠다. 그리고 이때부터 꿈에도 그리던 미국생활이 시작됐다.

워싱턴으로 향한 이준구… 미국 태권도 대스승 '준 리'의 탄생

▲     © 이준구 저서 트루토피아에서 촬영

미국에 간 이 총재는 사우스 웨스트 텍사스 스테이트 갈리지에 있는 사범대학에서 2년 동안 공부를 했다.

공부를 하면서 그는 학비와 생활비 마련을 위해 YMCA에서 토요일마다 태권도를 가르쳐 교수만큼 돈을 벌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워싱턴 국방부에서 태권도 사범을 맡아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그는 이때 태권도 5단이었고, 태권도 보급을 위해서는 워싱턴 정가를 잡아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던 터라 흔쾌히 응했다.

그런데 웬 청천벽력. 1962년 6월, 워싱턴에 도착하니 자신을 초청했던 국방부 직원이 퇴직을 한 것이다. 계획이 무산된 이 총재는 발길을 돌리지 않고, 그곳에 태권도장(준리태권도)을 차렸다. 준리태권도의 탄생은 이렇게 우연치 않게 시작됐다. 이날이 6월28일이다. 추후 워싱턴주가 매년 '준리의 날'(Jhoon Rhee Day)로 선포한 그날이다.

그는 열심히 가르쳤고, 그 결과 관원은 순식간에 늘어났다. 125명이나 됐다.

그러던 어느 날, 나중에 태권도를 결정적으로 미국 전역에 보급할 수 있도록 단초를 제공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 워싱턴에 지어진 한국전쟁 기념공원 완성 행사 후 백악관 공식 만찬에서 빌 클린턴 대통령과 대화를 하고 있는 이준구 총재.    © 아산톱뉴스

워싱턴포스트지를 읽던 이 총재는 국회의원 한 명이 강도를 당했다는 기사를 접했다. 이 총재는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태권도를 배우면 강도를 당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고, 그는 이 총재에게서 태권도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가 바로 뉴햄프셔주에 거주하던 제임스 클리브랜드 의원이었다.

클리블랜드 의원은 미국 의회에 이준구 총재와 태권도를 홍보했고, 많은 의원들이 태권도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미국 태권도의 대스승 '준 리' 탄생의 서막을 알린 것이다. 이후 이 총재에게 태권도를 배운 미국 상·하의원이 전 미 하원의장이었던 탐 폴리를 비롯해 리빙스턴 의원 등 350여 명이나 된다.

워싱턴에 소재한 4개 방송국에 매일 번갈아가며 출연, 태권도를 미국 전역에 알리며 유명세를 떨치기도 했다.

이로 인해 '미국 태권도의 대스승'이라는 칭호를 얻기도 했다. 이 밖에도 수많은 수식어를 통해 이준구 총재가 소개되고 있다.

태권도, 세계로 전파하다

▲     © 이준구 저서 트루토피아에서 촬영

그는 의원들에게만 태권도를 가르친 것이 아니다. 전 세계에서 온 대사 등 외교관들에게 '자녀를 (준리태권도)도장에 보내주면 우등생으로 만들어 주겠다. 그리고 인성교육이 제대로 되기 때문에 부모의 속을 안 썩일 것이다'라고 편지를 보냈다. 많은 외교관들이 자녀를 이 총재에게 보냈다.

이후 임기가 끝나고 자국으로 돌아간 외교관들은 태권도 사범을 한 명 보내달라고 요청해 왔고, 소개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이 총재는 "사범이 부족한 관계로 한국의 사범을 소개해 줬고, 그것이 씨앗이 돼 자기들끼리 연락을 하더니 인접국가의 한국 사범들이 늘어나서 지금은 181개 국에서 태권도를 한다"고 말했다.

덧붙여 "그것도 중요하지만 태권도가 한국 언어의 문화, 음식의 문화를 가져간 것도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태권도 사범이 '밥 먹으러 가자'고 하면 한국 음식을 먹으러 가게 됐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한국말을 사용하게 됐다고.

특히 1970년대 태권도 사범들이 갔을 때 그 나라의 왕이나 대통령의 경호원이 된 것을 얘기하며 "그 사람들이 삼성, 현대, LG의 인맥을 다 맺어준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태권도가 한국 국익에 미친 영향에 대해 자부심을 드러냈다.

소련으로 발길을 돌리다

▲ 러시아 인사들과 함께 한 이준구 총재.    © 이준구 저서 트루토피아에서 촬영

이 총재는 세계적으로 태권도가 알려지고, 보급되자 눈길을 구 소련으로 돌렸다.

"공산주의가 붕괴되기 전에 고르바초프가 페레스트로이카를 시작했을 때 독재를 하면 규범을 유지할 수 있잖은가. 독재가 없어지기 전에 자유만 넘치면 규범에 혼란만 가중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1989년 소련에 가서 태권도장을 열어야 되겠다고 마음 먹었다."

이 총재는 소련의 젊은이들에게 규범을 가르쳐야 한다고 결심했다. 하루 18시간씩 11일 동안 세미나를 했다.

그는 1989년 당시 소련에서는 무술이 모두 불법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체육부장관을 만나 이틀간에 걸쳐 담판을 져 전 무술이 합법화될 수 있게 했다. 당시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을 이 총재가 해낸 것이다.

이때 소련에 둥지를 튼 태권도는 공산주의가 붕괴돼 러시아가 탄생한 이후에도 계속해서 러시아인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 현재 65개의 도장이 러시아에서 운영되고 있다.

준 리, 이소룡과 알리 만나다

▲ 알리가 시합 후 이준구 총재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    © 이준구 저서 트루토피아에서 촬영

이준구 총재가 이소룡과 무하마드 알리에게 태권도를 가르친 것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이들과의 인연을 묻자 이 총재는 "이소룡과 만나게 된 것은 1964년이다. 롱비치 캘리포니아에서 열리는 가라테 시합이 계기가 됐다.

이준구 총재에 따르면 당시 태권도 시범을 보였고, 이소룡은 쿵푸를 했는데, 서로 감동을 했다. 이준구 총재는 발을 잘 썼고, 이소룡은 주먹을 잘 썼다. 그래서 서로 호감을 갖고 자신의 장점을 서로에게 가르쳤다. 서로가 선생님이자 학생인 것이다.

이때 인연을 계기로 이소룡은 추후 이준구 총재가 영화를 찍을 수 있도록 소개해 주연을 맡은 두 편의 영화를 찍기도 했다. 1973년 제작된 <태권도가 타격할 때: When Taekwondo Strikes>와 1980년에 제작된 <돌아온 용쟁호투>가 그것이다.

▲     © 이준구 저서 트루토피아에서 촬영

이 총재는 영화 촬영 당시 이소룡과의 일화에 대해서도 소개했다.

"이소룡은 불고기를 너무 좋아했다"며 "내가 영화촬영을 하면 촬영장으로 꼭 데리러 와 끝나고 난 뒤 함께 불고기로 저녁을 먹곤 했다"고 회상했다.

알리에게는 일명 '액큐 펀치'라고 만들어 가르쳐 줬다. 알리는 이 '액큐 펀치'로 1975년 독일 뮌헨에서 영국 선수 리차드 던을 상대로 열린 세계타이틀 방어전에서 KO로 승리했다.

경기가 끝난 뒤 "무슨 펀치냐"고 묻자 "그랜드 마스터 준 리가 가르쳐준 '액큐 펀치'"라고 소개하면서 유명해졌다.

알리에 대해서는 "알리는 미디어만 있으면 떠벌리고, 미디어가 없으면 아주 조용하다. 아주 영리하고, 홍보에는 타고난 사람이다. 재치가 있어서 기자들이 아주 좋아했다"고 떠올렸다.

이준구, '트루토피아'를 꿈꾸다

▲ 잡지 <PARADE>에 표지모델로 실린 이준구 총재.    © 이준구 저서 트루토피아에서 촬영

“여러분 행복하길 바라지요? 그러면 모든 것에 진실하십시오. 또 모든 일을 진심으로 하십시오. 그러면 당신의 마음은 참으로 아름다워집니다. 사람들은 자연히 아름다운 당신을 사랑하게 됩니다. 그것이 제가 평생 추구해온 진미애(眞美愛)입니다. 태권도를 통해 자신과 세상을 지켜가는 여러분, 하나님은 당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생김새는 다르지만 하나님의 마음을 닮는 것이 바로 피조물인 우리의 책무이고, 또한 보람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이 평화롭고 행복하길 원하십니다. 당신도 바로 그렇길 원합니다. 진실하십시오. 아름다운 당신은 모두가 사랑할 겁니다. 지금 세계는 서로 미워하고 싸움을 그치지 않고 있습니다. 거짓말로 시작하니 마음이 추해져서 서로 증오하고 결국 싸움으로 엄청난 희생을 자초합니다. 여러분 모두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누구도 미워하지 마십시오. 그러면 트루토피아도 그다지 멀지 않을 것입니다.”

이 총재가 태권도를 통해 꿈꾸는 이상적인 세상을 표현한 단어가 바로 '트루토피아'(TRUTOPIA)다.

'내가 진실하면 내 마음이 아름다워지고, 내 마음이 아름다우면 모두가 나를 사랑하고, 모두가 나를 사랑하면 나는 행복하다'는 뜻을 담고 있다.

즉 '진실한 사회가 오면 범죄도 없고, 법도 필요 없으며, 모두가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이다.

'트루토피아'를 알리기 위해 전 세계를 돌며 수없는 강연을 갖기도 했다.

이를 실천하기 위한 운동이 '10021운동'이다. 한마디로 세상을 아름답게 바꾸는 운동이다. 실천단체로 '국제10021클럽'을 만들었다.

'10021'은 100년의 지혜가 깃든 21세의 젊음을 모토로 하고, '21세기 내에 지구촌을 유토피아의 세계로 만들자'라는 뜻을 갖고 있다.

▲ 2003년 워싱턴 '준리의 날' 선포 행사 모습    © 이준구 저서 트루토피아에서 촬영

이 총재는 "'10021운동'을 전 세계에 전파함으로써 진실한 사회, 아름다운 사회, 사랑이 넘치는 지구촌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고, 빠르게 저변확대가 돼야 한다"고 주장하며 "'국제10021클럽'은 올바른 삶의 가치관의 빠른 저변 확대를 위해서는 지도자들의 교류를 통해서 전파하는 것이 가장 효율성이 있다고 판단해 지도자 교류를 통해 전 세계에 '10021운동'을 전개하자는 취지에서 만든 것이다. 나아가고자 하는 지표가 '진미애'(眞美愛) 정신을 실천하는 것으로, 유토피아를 만들려는 단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태권도의 세계화는 '10021운동'의 연장선에 있다. 나는 태권도를 좋아했고, '10021운동'을 하기 위해서 태권도를 했다"며 "태권도를 통해 '10021운동'을 전 세계적으로 전파하기 위해서 '국제10021클럽'을 창립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본부는 한국에 두고 있다. 이준구 총재는 1993년 한국을 방문하면서 '10021운동'의 취지를 선포했고, 좋은 취지라고 생각한 김성걸 현 부회장이 미국보다 한국에 본부를 두자고 설득해 10여 년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2003년 3월4일에 창립하게 됐다.

현재 한국 '국제10021클럽'에는 20여 명 가까운 시·도단체장이 부총재로 참여하고 있는 등 지도자 교류를 통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이 총재는 "'국제10021클럽'은 인간이 서로 배려와 이해를 하고 사는 세상을 만들어 행복한 사회를 만들고, 그것을 전 세계에 전파해 유토피아의 세계로 가는 교두보 역할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투병 중인 이준구 총재 "이겨낼 것이다"

▲ 유명한 미국 액션배우이자 캘리포니아 주지사를 지낸 아놀드 슈왈제네거 및 자신의 제자들과 함께 한 이준구 총재.    © 이준구 저서 트루토피아에서 촬영

한편 안타까운 소식이 있다. 앞서 밝혔다시피 이준구 총재는 현재 투병 중에 있다.

언제까지나 강하기만 할 것 같은 그가 2011년 초 '대상포진'이라는 병을 얻었다. 2년 반 가까운 시간을 젊은 사람들도 견디기 힘든 극심한 고통을 80이 넘는 고령의 나이에도 견디며 완치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태권도로 단련된 건강한 몸이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이 주위사람들의 전언이다.

그동안 각 나라를 돌며 치료를 위해 노력해 왔지만 효과를 얻지 못했다. 그는 결국 한방과 양방치료를 겸하기로 결심하고 국내에 들어와 서울 소재 한 유명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이 총재는 "반드시 이겨 내겠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아직도 할 일이 많이 남아 있다"며 일에 대한 열정을 보였다.

"아산시민 여러분,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매년 부친의 묘를 찾기 위해 아산을 방문하고 있는 이준구 총재는 끝으로 아산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며 아산시민들에게 인사를 전했다.

"저는 고향인 아산에 많은 애정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산시민들은 제게 특별합니다. 아산시민 여러분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합니다. 그리고 장수하십시오."

 
<이준구 총재의 업적 21가지>

1. 워싱턴에 첫 태권도 도장 개관, 전 세계가 태권도를 알다.

2. 미 의회에 준리태권도 도장 개관.

3. '정의의 힘'이라는 '태권무'를 영화 엑소더스 주제곡에 맞춰 안무.

4. 세계 최초로 무술훈련과 시합에 필요한 안전기구들을 개발해 세계 특허를 획득.

5. 전설적인 인물 이소룡의 소개로 1973년 골든하베스트 영화사 영화에 출연, 국제적인 배우가 되다.

6. 1974년 세계적인 권투선수 무하마드 알리의 무술코치가 되다.

7. 미국 독립 200주년 기념으로 1976년에 세기의 무술인상을 받다.

8. 1982년 7월4일 미 독립기념일 행사의 총집행위원장에 임명되다.

9. 1985년 무술도장들이 경영상 어려운 시기에 처음으로 무술도장 경영세미나를 시작해 많은 백만장자를 키워내다.

10. 처음으로 미국 스승의 날을 국회에 제안해 통과시켰으며, 레이건 대통령이 1986년 10월16일 서명, 제정되다.

11. 1989년 소련 체육부장관 아나톨리 콜레소프와 만나 수십년 동안 불법이었던 무술을 합법화시키다.

12. 코미디언의 대부인 밥 호프의 사망으로 그를 대신해 1999년과 2000년에 주한미군 장병들을 위한 위문공연으로 각 지역의 미군부대를 방문해 태권도 시범공연을 하다.

13. 세계에서 제일 유명한 모델들과 함께 1997년 3월16일에 출판된 잡지 <PARADE>(340만부 발간)의 표지에 실리다.

14. 2000년에는 위싱턴심포니오케스트라와 2005년에는 서울심포니오케스트라와 하모니카 협연을 하다.(KBS에서 방영)

15. 2000년 1월, 미국의 200년 역사상 미국에 가장 공헌이 큰 이민자 203인에 선정된 유일한 한국인이 되다. 앨버트 아인슈타인과 함께 영광을 차지.

16. 미 의회와 워싱턴 DC 앤서니 윌리엄 시장의 주도로 2003년 6월, 매년 6월28일을 '준리의 날'로 선포하다.

17. UN에 초청돼 '병든 세상을 생활철학으로 고치자'라는 제목으로 60분간 강연.

18. 80세에 1분에 팔 굽혀 펴기를 100번을 해내다.

19. 2007년 4월26일 모스크바에서 러시아 국제평화상 수상.

20. 2007년 6월5일∼9일까지 대만 총통 천수이볜의 국빈으로 초청받다.

21. 한국, 중국, 일본 대학생 연합의 국제대학생 단체 '오발'(OVAL) 특별초청으로 제주도에서 오발대회를 2009년 2월9일부터 13일까지 갖다.

이준구 준리태권도 협회 의장 약력

48년간 미국워싱턴 국회의사당에서 국회의원 태권도 특별지도
현)「JHOON RHEE 태권도 협회」창설자이자 의장.
현)「세계무술협회」창설자.
현)「JHoon Rhee 재단」의 창설자이자 의장.
현)「대한민국국회태권도클럽」상임고문.
1964년 8월 이소룡 발차기 전수
1973년 흑권출연, 용쟁호투출연
1975년 무하마드 알리 애큐펀치 기술전수
2007년 태권도의 명예의 전당에 오름

<주요 학력 및 경력사항>
1939. 3 ~ 1950. 5 수원 신풍초등학교,서울 동성중‧고등학교
1952. 1 ~ 1957. 10 대한민국 육군 중위로 제대
1958. 2 ~ 1960. 5 Southwest Texas Teachers College 수료
1960. 9 ~ 1962. 5 University of Texas, Austin, Texas 주 . 토목공학전공 12학점 미달
1995. 4.11 경남대학교 명예 이학박사 학위수여
2007. 8.22 상명대학교 명예 교육학 박사 학위수여
1947. 4 ~ 1950. 5 한국 서울소재 청도관에서 수련.
1958. 9 ~ 1960. 5 Southwest Texas Teachers College 태권도클럽 지도자.
1960. 9 ~ 1962. 5 University of Texas, Austin,Texas주 소재 태권도클럽 지도자.
1963. 9 ~ 1964. 5 미 국방부 관리 모임 태권도 지도자.
1965. 2 ~ 현재 미 의회 체육관에서 미의회 태권도클럽 설립.
1967.12 ~ 1968. 2 미 재무성 비밀 국방부에서 태권도 지도자.
1967. 5 ~ 1967. 7 미 해병대 백병전 대비 태권도 지도.
1991.12.2 ~ 현재 러시아에 65개의「Jhoon Rhee 태권도」도장 설립,
1985. 7 ~ 1988. 1 미국 레이건 대통령 체육. 교육 특별고문.
1990. 9. 5 ~ 1993 구 소련 옐친 대통령「정치인 훈련양성소」체육 교육 특별고문.
1988. 1 ~ 1991. 9 미국 부시 대통령 체육. 교육 특별고문.
1988. 1 ~ 1991. 9 미국정부「Asian American 정책」국가위원회 임원으로 지명.
1991 ~ 1993 구 소련 「국회분과위원회」체육. 교육 특별고문.
2001. 8 ~ 2004. 7 미국 대통령“아∙태 정책자문위원회”임원으로 지명.

<포상 및 저서>
1970 「Chon-Ju」,「Tan- Gun」,「Won-Hyo」,「Chung-Gun」,「Hwa-Rang」등 5권의 책.
1970 태권무를 클래식 및 세미클래식에 맞춰 창안, 안무.
1970 무술상「Black Belt Hall of fame」(명예의 전당)에 선정.
1974 워싱턴 터치다운 클럽의 「스포츠 상」수상.
1975 무술상「프로 가라데 전당」에 선정.
1976. 1.18 미국독립200주년「세기의 무술인」으로 선정.
1983 Black belt MAgazine에서 「올해의 인물」선정.
1992. 3.17 조지부시 미국대통령에 의해 721번째「Daily Point of Light」상 수상.
1992. 5.29 조지부시 미국대통령에「Excellence in Community Service」상 시상(백악관)
1993. 5.11 범 아시아 상공회의소에 의해 「Excellence 2000 Award」수상.
1998. 3.25 「A Vision for the 3rd Milennium」선언문 미국 국회의사록 기록
1999. 6.19 Professional Martial Arts Magazine'「A Life Time Achievement Award」수상
1999. 1999 미국 「올해의 이민상」수상 (8名中1人)
2000. 1 미국 정부 발표「미국 역사상 가장 성공한 이민자 203인」에 선정.
2003. 6.28 워싱턴D.C 매년 6월28일을 준리의 날(Jhoon Rhee Day) 로 선포
2007. 4.12 UN초청 특별강연
2007. 4.26 러시아 세계평화의회로 부터「2007 세계평화상」수상.
2007. 5. 16 한국 5.16 민족상 재단으로부터「5.16민족상(사회부문)」수상.
2007. 8. 8 미주동포후원재단으로부터 「자랑스런한국인상」수상.
2008. 9. 26 전 미 무술인 연맹으로부터 「살아있는 전설인상」공로상 수상.



기사입력: 2013/09/13 [15:31]  최종편집: ⓒ 아산톱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태권도인 13/09/14 [16:18] 수정 삭제  
  좋은 정보에 감사 드립니다..... ^^ 널리 홍보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변성진 13/09/15 [04:30] 수정 삭제  
  빨리 나으시고 힘내세요 아프지 마세요~~~~~~~~~~~~~~~~
홧팅~~~~~~~~~~~~~~~ ^^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관련기사목록
[이준구] 美 태권도의 대스승 준 리 "나는 아산사람이다" 박성규 기자 2013/09/13/

아산시, 국화전시회 폐막… ‘성황’
최근 인기기사
  회사소개/인사말개인정보취급방침윤리강령기자윤리실천기자회원 약관청소년보호정책지역신문의 미래광고/구독 안내 및 신청기사제보보도자료기사검색
발행처 : 아산톱뉴스닷컴 ㅣ (31521)충남 아산시 삼동로 34 (한라동백@ 102동 1710호)ㅣ전화: 041-534-3001ㅣ팩스: 041-534-3001
대표 박진구ㅣ발행ㆍ편집인 박성규ㅣ청소년보호책임자 박성규ㅣ이메일 : qkrtjdrb625@hanmail.net
정기간행물등록번호: 충남 아00068 ㅣ 사업자등록번호: 312-28-20878 l 후원계좌: 농협중앙회 301-0024-1056-51(예금주: 박성규)
발행연월일: 2009년 7월3일 ㅣ 등록연월일: 2010년 3월10일
Copyright ⓒ 2009. 아산톱뉴스 All rights reserved.
Contact qkrtjdrb625@hanmail.net for more information.
아산톱뉴스의 모든 콘텐츠를 무단복제 사용할 경우에는 저작권법에 의해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