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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도협약, 무효를 천명하고 간도 영유권 주장해야
 
김민수 문화재애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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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문화재애널리스트.     © 아산톱뉴스
중국 진(秦), 한(漢)은 흉노(匈奴)의 침략을 방어하기 위해 국경에 만리장성(萬里長城)을 축조하였고, 당(唐) 태종은 세계 제국 건설의 야심을 가져 만리장성 북쪽의 돌궐(突厥)을 침략하는 등 위협적이었으므로 고구려는 중국, 유목민족의 침략에 대비하고 국경을 방어하기 위해 요하(遼河)에 천리장성(千里長城)을 축조했다.

중국이 국경에 만리장성(萬里長城)을 쌓은 것처럼 고구려(高句麗)의 연개소문 또한 중국의 침략을 방어하기 위해 국경인 요하(遼河)에 천리장성(千里長城)을 쌓았는데 북간도 지역인 부여성(扶餘城:농안)에서 시작하여 서간도 지역의 발해만(渤海灣)에 있는 비사성(卑沙城: 대련)에 이르는 장성이었다.

간도(間島)는 1677년 이후 조선(朝鮮)의 영토임을 인정하여 청(淸)나라 사람은 거주가 금지되었으나 청나라가 1712년(숙종 38년) 목극등(穆克登)을 조선(朝鮮)에 보내 백두산(白頭山) 주변 청(淸)과 조선(朝鮮)의 국경을 분명히 하기 위해 백두산정계비(白頭山定界碑)를 세우라고 칙명을 내리고, 조선은 접반사(接伴使) 박권(朴權), 군관 이의복(李義復)에 명해 이를 따르도록 했다.

백두산정계비문에는 조선 측의 박권 이름이 보이지 않는데 박권은 고령이므로 백두산(白頭山)에 오르지 않고 군관과 역관만 딸려 보내 정계비를 세우게 됐다.

백두산정계비문(白頭山定界碑文)의 내용은 청(淸) 오라 총관(烏喇 摠管) 목극등은 청(淸)과 조선(朝鮮)의 경계를 살펴보니 서쪽은 압록강(鴨綠江)이요, 동쪽은 토문강(土們江)이므로 분수령에 돌을 새겨 필첩식(筆貼式)은 소이창, 통관(通官)은 이가 및 조선 군관(朝鮮 軍官)은 이의복, 조태상, 차사관(差使官)은 허량, 박도상, 통관(通官)은 김응헌, 김경문이라 기록하였다.

청(淸)나라가 1880년 토문(土門)이 두만(豆萬)을 뜻한다고 주장하였고 1881년 길림의 장군 명안과 청(淸)나라 황제가 특정한 중요 사건을 처리하기 위한 흠차대신(欽差大臣) 오대장을 보내어 간도(間島) 침략에 착수하고 조선은 1883년에 어윤중·김윤식을 보내어 백두산정계비(白頭山定界碑)를 조사하게 하고, 간도(間島)에 대한 중국의 침탈에 항의했다.

1885년, 1887년 이중하(李重夏)를 토문감계사(土們勘界使)로 파견하여 감계회담(勘界會談)을 통해 청과 국경문제를 놓고 백두산정계비(白頭山定界碑)의 토문(土門)에 대해 규명하고자 시도했으나 결렬되었다.

대한국(大韓國) 고조 광무제(高祖 光武帝)는 1897년 10월12일 백악(白嶽: 북악산)과 목멱(木覓: 남산) 사이의 경운궁(慶運宮) 대안문 앞 황단에서 천지(天地)에 제(祭)를 올리고 초대 황제에 등극하며 천하에 큰 한(韓)이라는 이름이 적합하므로 국호(國號)를 대한(大韓)이라 하고, 1897년을 광무(光武) 원년(元年)으로 삼는다고 천명하여 조선시대에 이어 대한시대(大韓時代)가 시작되었다.

대한국(大韓國)은 한반도 간도(間島) 녹둔도 제주도 대마도 대한해(大韓海: Sea Of Korea) 독도(Dokdo)를 비롯한 인접 도서, 해양을 통치하고 태극기(太極旗),애국가를 상징으로 하며, 북으로는 말갈(靺鞨:북간도)의 계(界)를 다하여 상아와 가죽을 생산하고 남으로는 탐라(耽羅:제주도)을 거두어 귤과 해산물을 공(貢)받은 대한국은 제주에서 간도까지 남북으로 4천리 영토를 통치했다.

1903년(광무 7년) 대한제국은 간도를 함경도로 편입하는 동시에 대한국 간도관리사(間島管理使) 이범윤(李範允)을 간도(間島)에 파견하여 직접 관할, 통치하며 치안 유지 및 대한제국인 보호에 힘썼다.

1905년 11월 고조 광무제(高祖 光武帝)가 체결 비준하지 않아 불법, 무효인 을사늑약으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강탈한 일제는 1909년 9월4일 불법적으로 청과 간도협약(間島協約)을 맺고 대한제국령 간도의 영유권을 청에 불법 양도했다.

대한국(大韓國)은 1910년 8월 경술늑약(庚戌勒約)으로 일제에 불법 병탄되었으며 3·1 대한광복운동 직후인 1919년 9월 한민족사 최초로 주권재민, 삼권분립을 선언한 민주공화제의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중국 상해에 수립되어 1945년 8월 15일 대한 광복까지 대한광복운동을 펼쳤다.

1945년 8월15일 일본제국주의(日本帝国主義)로부터 대한국(大韓國)의 주권(主權)과 영토(領土)를 되찾아 1910년 경술늑약(庚戌勒約)으로 불법 병탄(倂呑)당한 대한국(大韓國)의 국권을 회복하는 대한 광복(光復)을 하였고, 1948년 8월15일 서울에 민주공화제의 대한민국(大韓民國) 정부를 수립하였다.

간도가 대한제국을 계승한 대한민국의 영토이므로 정부, 국회는 간도협약의 무효를 천명하고 간도 영유권을 주장해야 하며, 헌법을 개정하여 대한민국의 대한제국 영토 계승을 공식 천명하고 중국과 국경조약을 체결해야 한다.

기사입력: 2011/09/04 [13:20]  최종편집: ⓒ 아산톱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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