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적 반대의 시대를 열어가자!
 
이찬석(본지 칼럼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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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신호등 앞에 우리는 서 있다

사람들은 신호등을 건널 때 언제나 새로운 기운을 느낀다.

매일 건너는 길목을 싫증나지 않고, 새로운 감정을 느끼며 건너는 것은 무수히 바뀌는 신호등이라는 출발지점에 서 있기 때문이다.

빨간불이 푸른 신호등이 되는 과정 속에서 뭔가 다른 기운을 느끼기에 신호등을 건너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빠르고 기운차다. 신호등을 건너고 나면 다시 길이다. 멈춰 선 후 파란 신호등을 건너가서 당도한 곳이 종점이 아니라 다시 가야할 길이 멀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희망은 경계선이 무너지는 곳에서 기회를 찾는다. 역사의 출발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지금 우리는 새로운 역사의 신호등 앞에 서 있다. 저마다 박근혜 정부의 신호등 앞에서 기대와 설레 임으로 들떠 있는 것이다.

새로운 대통령의 시대는 우리 사회를 다른 변화의 물결로 굽이치게 한다. 그 출발이 좋은 결실을 가져다주든, 그 반대이든 지금 당장은 중요하지 않다. 빨간 신호등이 파란 신호등으로 바뀐다는 그 한가지의 사실만으로 우리는 즐겁기까지 하다.

작은 식당의 주인이 바뀌면 서비스가 달라지는 법인데, 나라의 주인이 바뀌는 것이니 정도의 변화는 있을 것이기에 우리가 거는 기대가 크지 않을 수 없다.

새 발길에 딴 지는 걸지 말자

새로운 정부는 새 옷을 갈아입고, 새 출발을 하기 위해 진용을 갖추고 있다.

상처와 분열로 굴곡 많은 현대의 역사를 국민 행복 시대로 재편하려는 박근혜 당선인의 고민과 진지한 살핌이 인수위원회의 활동을 더디게 하고 불안 요인으로 작용을 한다고 해도 반대로 생각해 볼 때 그만큼 진지한 역사의식을 엿볼 수가 있다.

오랜 준비를 할수록 실패는 줄어든다. 배가 항구를 출발 하지 않았는데, 고동을 울리지 않느냐고 채근하는 모습은 세상에 부정적인 기운만 살포하는 꼴이 된다. 무슨 옷으로 갈아입고, 무슨 색깔로 치장을 하든지 묵묵히 지켜보는 것이 통합의 역사를 위해 좋은 일이다.

그동안 균형을 이룬다는 명분을 삼은 반대세력들은 합리적이고, 균형 잡힌 역사를 위해 맹목적인 찬성보다 반대가 좋다고 나름은 타당한 논리를 펼쳐 왔으나 애초의 목적보다는 정치적 이익을 취하는데 사용되다보니 나라 살림이 시끄럽기만 했다.

이익을 논하는 반대는 그 자체가 반대를 위한 반대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 그보다는 대의의 이익을 앞에 놓고 반대를 할 때 합리적인 역사의 항해가 가능한 일이다.

좌우논리는 대립의 악순환만 불러 온다. 견제와 반대는 엄연히 다르다. 견제는 오만과 독주 역사의 채찍이고, 반대를 위한 반대는 합리적인 성장 역사의 심각한 장애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만이 희망은 아니다

선거 이후 국민의 성향은 한쪽은 비관계성의 이탈자적 입장에서 관망하거나 한쪽은 적극적인 ‘참여 기여형’ 두 가지로 구분 배치된다. 박근혜 당선인을 지지한 세력들은 비교적 후자에 속하고, 반대한 세력은 전자에 속한다.

벌써부터 박 당선인의 지지율을 올렸다가 내렸다가 춤을 추게 한다거나, 이를 국민들의 평점으로 부각시켜 소위 기를 죽이는 일이 공공연히 벌어지고 있다.

검증이라는 미명 하에 새로운 정부를 조리게 위에서 놀아나는 쌀처럼 고르고, 또 고르며 진을 빼고 있는 것이다.

세상이 온통 비리로 돌아가니 먼지하나 묻지 않은 청렴한 인사를 찾아내어 ‘그래도 세상에는 털어도 먼지 안 나는 깨끗한 사람이 존재하는구나’ 하는 위안을 삼으려고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이토록 치열한 삶의 경쟁 구도 속을 치열하게 헤쳐가야 하는 이상 어찌 한 번 기울지 않고, 먼지 하나 묻지 않으며 바로 서는 사람이 있을까?

산과 들을 벗 삼고, 풍류를 지기 삼는 조선시대에도 사람의 욕망이 적지 않았으니 물질문명의 거대한 물결이 굽이치는 현대에 이르러 능력은 고사하고, 먼지 하나 묻지 않은 사람을 찾아 자격을 논하느라 국력을 낭비하고 있는 것을 보면 혹시 반대를 위한 반대의 시작은 아닌지 염려스러울 따름이다.

생산적 반대의 시대를 열어야

반대는 필요하다. 제어장치 없는 역사는 불균형의 악순환을 가져온다.

그러나 필요 이상의 제어작동은 가는 길을 멈추게 한다. 소위 안다리, 밭다리 걸고 넘어지는 물귀신 작전은 역사의 항해 자체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고, 방향을 잃게 하는데 사용 될 뿐이다.

반대의 정당성은 개인의 이익을 배제했을 때 가능하다. 만약 정당의 이익이나 개인의 이익, 더 나아가 단체의 이익이 깔려있는 반대라면 이는 정당한 반대가 아니라 정치의 안정성을 해치고 통합의 시대를 가로막는 최대의 적이다.

이익을 편취하기 위한 고도의 전술일 뿐이다. 반대는 당당하고, 찬성은 무력한 수치감을 느끼는 현상은 우리 자신이 얼마나 개인과 집단의 이익을 위해 반대를 일삼아 왔는가를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아군과 적군으로 나누어지는 분열의 공식으로는 새로운 시대는 열릴 수 없다. 나라 살림은 특정한 인물 개인이나 정당뿐 아니라 여·야, 그리고 국민 모두가 참여하는 일이다. 얼마나 잘하는지 ‘두고 보자’ 식의 관망과 반대의 이유를 찾아 나서는 사람들이 도사리고 있는 한 어느 누구도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 없고, 태평성대를 이룰 수 없다.


 
이찬석 본지 칼럼위원



기사입력: 2013/02/12 [19:56]  최종편집: ⓒ 아산톱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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