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회원가입
전체기사보기
정치/행정   시사   교육/체육/문화   피플인   종합/특집   칼럼/기고   사설
편집  2020.08.05 [20:07]
뉴스
정치/행정
시사
교육/체육/문화
피플인
종합/특집
칼럼/기고
사설
공지사항
자유게시판
부음
혼인
행사
개업
부동산 삽니다
중고차 삽니다
사고팔고 삽니다
자유기고
토론마당
사랑방
모임
아이들방
회사소개/인사말
개인정보취급방침
윤리강령
기자윤리실천
기자회원 약관
청소년보호정책
지역신문의 미래
기사제보
HOME > 뉴스 > 칼럼/기고
대한제국 황족 오류 바로 잡아야
 
김민수 문화재애널리스트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rss band

▲ 김민수 애널리스트.     © 아산톱뉴스
1897년 10월12일 대한제국 건국 후 대한제국 고조 광무제(高祖 光武帝)는 1900년 황자(皇子) 의친왕(義親王), 영친왕에게 친왕(親王) 책봉(冊封)하였다. 일제 통감부에 의해 황태제(皇太弟)로 책봉되지 못한 황위 승계 1순위 의친왕(義親王)을 대한제국 3대 황제(皇帝)로 추숭(追崇)하여야 한다.

고조 광무제는 명성황후 민씨, 귀인 장씨, 귀비 엄씨, 귀인 이씨, 소의 이씨, 귀인 정씨, 귀인 양씨 등 총 7명의 황후, 후궁과의 사이에 많은 황자(皇子)들이 있었고, 고조 광무제는 명성황후와의 사이에 장녀인 아지공주를 뒀고, 귀인 양씨와의 사이에서 경운궁에서 태어난 덕혜옹주는 1919년에 대한제국 황실의 시종 김황진의 조카 김장한과 약혼했다.

제정의 대한제국은 1919년 1월 고조 광무제의 붕어(崩御)로 4월 공화정의 대한민국으로 전환되었으며, 대한제국 고조 광무제의 직계 후손은 황위 승계 1순위 의친왕의 후손인데 의친왕(義親王)과 10여 명의 후궁 사이에 13황자 9옹주가 있으며 공주는 없었다.

의친왕은 1893년 12월6일 의친왕비 김수덕(金修德)과 혼인하였으며, 1900년 8월 의친왕에 책봉되었으며, 대한제국 육군 부장이 되었고, 대한적십자사 총재에 취임하였으며, 대한제국 최고의 훈장인 금척대훈장(金尺大勳章)을 수여받았다.

의친왕(義親王)은 2대 순종 융희제의 다음 서열로 황위 승계 1순위이었으나 1895년 일본 정부의 명성황후 시해,1905년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승리하여 친일파가 득세하였고, 고조 광무제 시위상궁 엄상궁의 견제와 이토 히로부미 일제 통감의 방해로 대한제국 황태제에 책봉되지 못하였다.

1910년 8월 경술늑약 늑결 이후에는 일제의 삼엄한 감시를 피하여 대한광복운동가들과 끊임없이 접촉, 교신하며 대한광복운동을 지원하였다. 1911년 11월 33인의 민족지도자들과 함께 독립선언서에 서명하였고, 의친왕을 망명하게 하여 대한광복운동을 활성화하고자 한 대동단(大同團)의 김가진,전협(全協)과 망명을 모의하였으나 간도의 안동에서 일제 경찰에 발각되었지만 일본에 저항하여 배일 정신을 지켜내었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사동궁에서 임어하다가 1955년 8월 서울시 종로구 안동궁에서 붕어(崩御)하였다.

대한제국 1대 고조 광무제는 아지공주가 있고, 2대 순종 융희제는 공주가 없었고, 3대 의친왕(義親王)은 공주는 없고 9옹주가 있다. 대한제국 고조(高祖) 광무제는 1897년 명성황후(明成皇后)를 추책하였으며, 1907년 민갑완(閔甲完)을 영친왕비(英親王妃)로 간택하였고, 일제 통감부가 황위 계승 1순위 의친왕(義親王)의 황태제 책봉(冊封)을 막았으며, 1910년 8월 일제의 불법 침략에 의한 경술늑약(庚戌勒約) 늑결은 무효이고, 1919년 1월 고조 광무제의 붕어(崩御)로 4월 상해에 민주공화제의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됐다.

영친왕(英親王)은 대한제국 1대 고조 광무제의 일곱째 아들이며, 어머니는 1895년 일본 정부의 명성황후 시해 후 득세한 명성황후를 모시는 시위상궁(侍衛尙宮)이었던 엄 상궁이고, 1900년(광무 4) 8월 영친왕(英親王)에 책봉되었으며, 1907년 영친왕비(英親王妃) 민갑완(閔甲完)은 영친왕비(英親王妃)로 간택되고 택일하여 가례를 올릴 예정이었으나 이토 통감이 영친왕을 대한제국 강제 병합의 볼모로 일본에 데려갔고, 영친왕은 일제에 저항하지 않았으며, 영친왕비(英親王妃)로 간택된 민갑완(閔甲完)은 영친왕을 기다리며 책을 벗 삼아 지냈다.


전제군주제의 대한제국은 1919년 1월 고조 광무제의 붕어(崩御)로 4월 민주공화제의 대한민국으로 전환됐다.

대한제국 황족의 책봉권자인 고조(高祖) 광무제는 1907년 민갑완(閔甲完)을 영친왕비(英親王妃)로 간택하였고, 1910년 8월 일제의 침략에 의한 경술늑약(庚戌勒約) 늑결은 불법 무효이고, 1919년 4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으로 민주공화정으로 전환되어 대한제국 황제의 치세는 1919년 4월에 끝났으며, 심청색 이화문 적의(翟衣)는 대한제국 황후, 황태자비와 의친왕비가 착용한 대례복이다. 대한제국 황족이 아닌 일본 왕족 마사코를 일본으로 송환하고 영친왕릉에 영친왕비(英親王妃) 민갑완(閔甲完)을 합장(合葬)해야 한다.

고궁박물관은 제왕기록실과 대한제국실의 대한제국 황실 연표에 1대 고조 광무제(1897-1919), 2대 순종 융희제(1919), 황태제 의친왕, 영친왕비(英親王妃) 민갑완(閔甲完)으로 바로 기술하여야 하며, 대한제국실의 영친왕비 사진을 민갑완으로 교체하고 왕실생활실의 심청색 이화문 9등 적의(翟衣)를 대한제국 황태자비와 의친왕비가 착용한 대례복으로 바로 전시 설명하여야 한다.

기사입력: 2011/08/25 [17:42]  최종편집: ⓒ 아산톱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관련기사목록
[김민수] ‘731부대’ 민간인 생체실험 대학살 사죄 배상해야 김민수 문화재애널리스트 2012/10/19/
[김민수] 간도협약, 무효를 천명하고 간도 영유권 주장해야 김민수 문화재애널리스트 2011/09/04/
[김민수] 대한제국 황족 오류 바로 잡아야 김민수 문화재애널리스트 2011/08/25/
[김민수] 황실문화재는 구입 아닌 국가귀속 대상이다 김민수 문화재애널리스트 2011/08/21/
[김민수] ‘Sea Of Korea Dokdo’ 단독 표기 천명하고 관철시켜야 김민수 문화재칼럼리스트 2011/08/11/
[김민수] 문화재청, 문화재관리학과 졸업자 인사발령 손해배상 해야 김민수 시민기자 2011/08/07/
[김민수] 일본 방위백서 발표, 독도 ‘日 영토 주장’ 경악 김민수 시민기자 2011/08/02/

아산 인주면 냉정리, ‘소각·산불 없는 녹색마을’ 선정
최근 인기기사
  회사소개/인사말개인정보취급방침윤리강령기자윤리실천기자회원 약관청소년보호정책지역신문의 미래광고/구독 안내 및 신청기사제보보도자료기사검색
발행처 : 아산톱뉴스닷컴 ㅣ (31521)충남 아산시 삼동로 34 (한라동백@ 102동 1710호)ㅣ전화: 041-534-3001ㅣ팩스: 041-534-3001
발행ㆍ편집인 박성규ㅣ청소년보호책임자 박성규ㅣ이메일 : qkrtjdrb625@hanmail.net
정기간행물등록번호: 충남 아00068 ㅣ 사업자등록번호: 312-28-20878 l 후원계좌: 농협중앙회 301-0024-1056-51(예금주: 박성규)
발행연월일: 2009년 7월3일 ㅣ 등록연월일: 2010년 3월10일
Copyright ⓒ 2009. 아산톱뉴스 All rights reserved.
Contact qkrtjdrb625@hanmail.net for more information.
아산톱뉴스의 모든 콘텐츠를 무단복제 사용할 경우에는 저작권법에 의해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