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3.1독립만세운동 107주년을 경축하며

 
신상구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국학박사,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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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독립만세운동은 한민족 최대의 비폭력적인 항일독립만세운동으로 일제의 부당한 조선 점령과 무단통치, 미국 대통령 윌슨(Woodrow Wilson, 1856-1924)의 민족자결주의 원칙, 중국 길림성의 무오독립선언과 동경 유학생의 2·8독립선언, 김규식(金奎植)의 독립 시위 주문, 고종의 독살설 등이 직접적인 원인이 돼 발생했다.

 

특히 고종의 독살설을 전해 듣고 분개해 인산일(因山日)인 1919년 3월 3일 전국에서 구름처럼 몰려온 수십만 군중이 한양 한복판에서 시위를 벌였다.

 

▲ 고종의 독살설을 전해 듣고 분개해 인산일(因山日)인 1919년 3월 3일 전국에서 구름처럼 몰려온 수십만 군중이 한양 한복판에서 시위를 벌이는 장면.  © 신상구

 

3·1독립만세운동은 민족종교인 천도교를 비롯하여 기독교, 불교가 주도했다. 천도교와 기독교 인사들의 연합으로 만세 시위 계획과 장소가 결정됐다. 독립선언서 초안은 육당(六堂) 최남선(崔南善)이 작성했고, 춘원(春園) 이광수(李光洙)가 교정을 보았으며, 만해(萬海) 한용운(韓龍雲)이 공약 3장을 덧붙였다.

 

원래 3·1독립만세운동은 3월 3일로 예정됐으나, 옥파(沃坡) 이종일(李鍾一)이 보성사(普成社)에서 독립선언서를 인쇄하다가 종로경찰서 고등계 형사인 신철(申哲:일명 申勝熙)에게 발각되는 바람에 3월 1일로 앞당겼다. 2월 28일경 의암(義菴) 손병희(孫秉熙)의 집에 모여 유혈 충돌을 피하기 위해 약속 장소인 탑골공원에 나가지 않기로 결정했고, 민족대표가 모일 장소는 태화관으로 바뀌었다. 

 

1919년 3월 1일 오후 2시에 모이기로 했던 조선의 민족대표 33인은 늦게 온 사람이 있어 오후 3시가 되어서야 길선주(吉善宙), 유여대(劉如大), 김병조(金秉祚), 정춘수(鄭春洙)를 제외한 29인이 모였다. 그들은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의 태화관(泰和館)에서 조선이 독립국임을 선언했고, 모든 행사가 끝난 때가 오후 4시 무렵이었다. 그들이 총독부 정무총감 야마가타 이자부로(山縣伊三郞)에게 전화를 걸어 독립선언 사실을 알리자마자 60여 명의 일본 헌병과 순사들이 태화관에 들이닥쳐 민족대표를 남산 경무총감부와 지금의 중부경찰서로 연행했다. 저녁 무렵에 나머지 4인도 경찰에 자진 출두했다.

 

한편 오후 2시에 태화관과 300m 떨어진 원래 약속 장소였던 탑골공원에서는 학생들이 모여들었다. 민족대표 33인이 보이지 않아 한동안 당황했으나 경신학교 출신 정재용(鄭在鎔)이 팔각정에 올라가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다. 그러자 탑골공원에 모인 1천여 명의 학생이 목이 터져라 독립만세를 외쳤다. 자그마한 태극기와 선언서가 하늘에서 내리는 꽃비처럼 쏟아졌다. 시위 군중은 두 갈래로 나뉘어 행진을 했는데, 한 갈래는 종로 보신각을 지나 남대문 쪽으로 향하고, 한 갈래는 매일신보사 옆을 지나 대한문을 향했다.

 

대한문에 도착한 군중을 이끌던 사람이 덕수궁의 혼전에 나아가 세 번 절하고 계속 만세를 불렀다. 그리고 계속 진행해 서대문을 돌아 태평로를 지나 미국 영사관에 이르렀다. 종로에 이르러 다시 연설을 하자 일본 헌병과 기마병들은 칼을 휘두르며 해산시키려 했다. 그러나 군중들은 태연자약한 태도로 물러가지 않다가 오후 6시 자진해산했다. 다음 날 총독부는 독립단을 수색하고 체포해 투옥했는데 그 숫자가 1만여 명에 이르렀다.

 

3·1독립만세운동은 삽시간에 전국으로 퍼져나가 3월 1일부터 4월 30일까지 함경남도 북청, 평남 강서군 사천, 충남 천안시 병천, 충북 괴산군 괴산읍, 부산 동래, 전북 남원과 군산, 수원시 향남면 제암리 등 한반도 전역에서 거세게 벌어져 일제를 당혹케 했다. 임종국(林鍾國)의『실록 친일파』(돌베개, 1991)에 따르면, 60일 동안 전국에서 1천214회의 항일독립만세 운동이 벌어졌다 한다.

 

3·1독립만세운동은 일본과 연해주 등 해외에서도 벌어져 1년여 동안이나 지속됐다. 조선총독부의 공식 집계에 따르면, 106만 명이 3·1운동에 참가했고, 진압 과정에서 553명이 사망했으며, 1만2천 명이 체포돼 고초를 겪었다.

 

3·1독립만세운동 이후 3개월간 만세운동 상황은 202만3천89명이 시위에 참가했으며, 시위 횟수는 1천542회에 달한다. 무려 사망자가 7천509명, 부상자가 1만5천961명, 피체포자가 4만6천948명에 이르렀으며, 헐리고 불탄 민가가 715호, 교회가 47개소, 학교가 2개 교였다.

 

3·1독립만세운동으로 독립은 하지 못하고 많은 피해를 입었지만, 한민족의 독립의지를 세계 여러 나라에 널리 알렸다. 그리고 1919년 4월 11일 중국 상해에서 민주 공화제의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수립됨으로써 19세기 후반부터 이어져 온 근대 국민국가 수립운동이 첫 결실을 맺었다. 또한 조선총독부가 무단통치를 문화 통치로 바꾸어 단체 활동 및 언론 활동이 허가됐고 아주 기초적인 초등 교육이 확대됐다. 그런가 하면 중국의 5·4 운동, 인도의 반영운동, 베트남·필리핀·이집트의 독립운동에도 영향을 끼쳤다. 

 

3.1절 107주년을 맞이하여 독립의지를 되새기고 역사적 가치를 공유하기 위해 서대문형무소 역사관과 천안 독립기념관에서 다양한 행사를 개최할 예정이다. 3.1일 3.1절 107주년 기념식은 오전 10시에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애국지사, 독립유공자 유족 등 1천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개식사, 독립유공자 후손 표창, 이재명 대통령 축사, 3·1절노래 제창, 만세삼창 순서로 개최했다. 그리고 시민들의 소망이 담긴 대형 태극기 게양식을 올렸다.

 

한편 2월 28일 오후 5시에 감리교신학대학교 웨슬리체플관에서 서대문오케스트라 함신익과 심포니 송의가 삼일절 기념음악회를 개최했다. 

 

시민참여 프로그램으로는 역사해설 트래킹, 한복 3.1운동 프래시몹, 독립 낭독 챌린지, 역사체험 부스 운영 등을 선보인다. 천안 독립기념관에서는 '1919 그날의 함성' 문화행사가 열린다. 겨레의 큰 마당에서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웅장한 만세운동 퍼포먼스, 천안시립풍물단 공연, 특별 체험 등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무료로 진행된다. 

 

국가보훈부(장관 권오을)는 제107주년 3.1절을 맞아, 일본군을 공격하다 체포되어 순국한 박선봉 선생 등 독립유공자 112명을 포상한다고 밝혔다. 112명의 포상자 중 건국훈장은 21명(애국장 9, 애족장 12), 건국포장 2명, 대통령표창은 89명으로, 포상자 중 생존 애국지사는 없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포상된 독립유공자는 총 1만 8,776명으로, 건국훈장 1만 1,941명, 건국포장 1,570명, 대통령표창 5,265명이며, 이 가운데 여성은 676명, 외국인은 80명이다.

 

국가보훈처가 2019년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지난 5년간 빅데이터(뉴스, 블로그, 트위터)로 139억 건을 분석하여 뽑은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 48명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표-1> 국가보훈처가 2019년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뽑은 대한민국 대표 독립운동가 12명

 ▲ 표 작성자 : 충청문화역사연구소 책임연구원 신효섭(辛孝燮, 1982) © 국가보훈처  

 

국가보훈처는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2019년 ‘이달의 독립운동가’ 12인을 온라인 국민투표로 선정했다.

 

1위는 안중근(安重根, 1879-1910) 의사, 2위 백범(白凡) 김구(金九 1876-1949) 선생,  3위 해환(海煥) 윤동주(尹東柱, 1917-1945) 시인, 4위 유관순(柳寬順, 1902-1920) 열사, 5위 매헌(梅軒) 윤봉길(尹奉吉, 1908-1932) 의사, 6위 도산(島山) 안창호(安昌浩, 1878-1938), 7위 만해(萬海) 한용운(韓龍雲, 1879-1944) 시인, 8위 박열(朴烈, 본명 朴準植, 1902-1974), 9위 백야(白冶) 김좌진(金佐鎭, 1889-1930), 10위 철기(鐵驥) 이범석(李範奭, 1900-1972), 11위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 1880-1936), 12위 소파(小波) 방정환(方定煥, 1899-1931)이다. 

 

그리고 국가보훈처는 2019년 3월 1일부터 31일까지 한 달 동안 지난 5년 간 뉴스와 블로그, 트위터 등의 빅데이터 139억 건을 분석해 국민 관심도가 높은 순으로 독립운동가 48명을 추천했다.

 

그 결과 1위는 다묵(多默) 안중근(安重根, 1879-1910) 의사가 올랐다. 백범(白凡) 김구(金九 1876-1949) 선생, 해환(海煥) 윤동주(尹東柱, 1917-1945) 시인, 유관순(柳寬順, 1902-1920) 열사, 매헌(梅軒) 윤봉길(尹奉吉, 1908-1032) 의사, 도산(島山) 안창호(安昌浩, 1878-1938), 만해(萬海) 한용운(韓龍雲, 1879-1944), 박열(朴烈, 본명 朴準植, 1902-1974), 백야(白冶) 김좌진(金佐鎭, 1889-1930), 철기(鐵驥) 이범석(李範奭, 1900-1972) 등이 2~10위에 올랐다.

 

11~20위는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 1880-1936),소파(小波) 방정환(方定煥, 1899-1931), 남자현(南慈賢, 1872-1933), 권기옥(權基玉, 1901-1988), 우당(友堂) 이회영(李會榮, 1867-1932), 면암(勉菴) 최익현(崔益鉉, 1833-1907), 해공(海公) 신익희(申翼熙, 1892-1956), 안경신(安敬信, 1888-?), 주시경(周時經, 1876-1914), 송재(松齋) 서재필(徐載弼, 1864-1951), 백암(白岩) 박은식(朴殷植, 1859-1925)이 올랐다.

 

21~30위는 의암(義菴) 손병희(孫秉熙, 1861-1922),  수당(修堂) 정정화(鄭靖和,  본명: 정묘희(鄭妙喜), 1900-1991), 이봉창(李奉昌, 1901-1932), 박차정(朴次貞, 가명 林哲愛, 1910-1944), 한지(韓志) 김상옥(金相玉, 1890-1923), 호머 베절릴 헐버트(Homer Bezaleel Hulbert, 1863-1949), 김상덕,(金尙德, 1891-1956), 계정(桂庭)) 민영환(閔泳煥, 1861-1905), 석오(石吾) 이동녕(李東寧, 1869-1940), 나석주(羅錫疇, 1892-1926)가 올랐다.

 

31~40위는 석주(石洲) 이상룡(李相龍, 1858-1932), 철기(鐵驥) 이범석(李範奭, 1900-1972), 김성숙(金星淑, 1898-1969), 심훈(沈熏, 본명: 沈大燮, 1901-1936), 고당(古堂) 조만식(曺晩植, 1883-1950), 주기철(朱基徹, 1897-1944), 여천(汝千) 홍범도(洪範圖, 1868-1943), 성재(省齋) 이시영(李始榮, 1869-1953), 김동삼(金東三, 1878-1937),의병장 신돌석(申乭石, 본명은 신태호(申泰浩), 일명은 신돌석(申乭錫) 1878-1908) 순으로 포함됐다.

 

41~48위는 위당(爲堂) 정인보(鄭寅普, 1893-1950), 이위종(李瑋鍾, 1884-1924), 의암(毅菴) 유인석(柳麟錫, 1842-1915), 나운규(羅雲奎, 1902-1937), 김마리아(金瑪利亞, 1891-1944), 백산(白山) 지청천(池靑天), 본명은 지대형(池大亨, 1888-1957),  보재(溥齋) 이상설(李相卨, 1870-1917), 우강(雩岡) 양기탁(梁起鐸, 1871-1938) 등이다.(출처: 나라사랑신문 2018년 8월3일자)

 

권오을(權五乙, 1957) 국가보훈부 장관은 “제107주년 3.1절을 맞아 자주독립의 위대한 역사를 쓰는데 공헌하신 분들께 독립유공자 포상을 하게 되어 매우 뜻 깊다”면서 “나라를 빼앗긴 혹독한 시련과 백 번의 좌절에도 굴하지 않고 독립을 쟁취하셨던 선열들의 그 숭고한 독립정신을 국민과 함께 기억하고, 최고의 예우로 보답할 수 있도록 성심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재명(李在明, 1963) 대통령은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제107주년 3·1절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통해 "3·1혁명은 독립선언이자 평화 선언이었으며, 우리가 나아갈 평화와 공존의 미래를 제시한 나침반이었다."고 강조했다.

 

▲ 이재명 대통령이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제107주년 3·1절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는 장면.  © 신상구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광복절에 밝힌 것처럼 미서훈 독립유공자 발굴·포상을 확대하고, 독립유공자 유족을 더욱 두텁게 지원하기 위해 각별히 살필 것"이라며 "백범 김구 선생 탄생 150주년을 맞은 올해, 기념사업을 통해 그 숭고한 뜻을 이어나가겠다."고 말했다.

 

또한 "효창공원 일대를 '국립효창독립공원'으로 지정하고 상하이 임시정부 청사의 폭넓은 활용 방안을 마련해 선열들의 독립 정신을 대대로 기리겠다"며 "공동체를 배반한 행위는 준엄하게 심판받는 그런 상식이 통하는 공정한 나라를 반드시 만들어내겠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아울러 "북한과의 관계는 북한체제를 존중하며 일체의 적대행위도, 어떠한 흡수통일 추구도 하지 않고 대화 재개 노력도 계속해 나가겠다"며 "페이스메이커로서 북미 간의 대화가 조속히 재개될 수 있도록 미국은 물론 주변국과 소통하겠다."고 밝혔다.

 

일본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셔틀외교를 통해 현실에 대응하고 미래를 함께 열어나가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론'을 언급하면서 "동북아의 평화를 세계의 평화로 이어가고자 했던 선열들의 바람대로 화합과 번영을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필자 소개>

▲ 신상구 박사.     ©아산톱뉴스

 

- 1950년 6월 26일 충북 괴산군 청천면 삼락리 63번지 담안 출생

 

부친 신종순(辛鍾淳), 모친 유옥임(兪玉任사이의 5남 2녀 중 장남

 

아호 대산(大山또는 청천(靑川), 본관 영산신씨(靈山辛氏덕재공파(德齋公派)

 

백봉초청천중청주고청주대학 상학부 경제학과를 거쳐 충남대학교 교육대학원 사회교육과에서한국 인플레이션 연구(A study of korean inflation(1980.2)로 사회교육학 석사학위를 취득하고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UBE) 국학과에서태안지역 무속문화 연구(A study of shamanic culture in Taean)(2011.8)로 국학박사학위 취득

 

한국상업은행 종로구 재동지점에 잠시 근무하다가 교직으로 전직하여 조치원중조치원여고삽교중한내여중천안북중천안여중태안중천안중 등 충남의 중등학교에서 35년 4개월 동안 수많은 제자 양성

 

주요 저서 :

대천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1994),

아우내 단오축제(1998),

한국 노벨문학상 수상조건 심층탐구(2019)

한민족의 원대한 꿈 노벨상 수상전략(2024) 등 다수

 

수상 실적 예산군수 감사장대천시장상(2), 천안시장상(2), 천안교육장상충남교육감상(2통일문학상(충남도지사상), 국사편찬위원장상한국학중앙연구원장상자연보호협의회장상(2교육부장관상(푸른기장),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문학 21시부문 신인작품상,문학사랑·한비문학』 문학평론 부문 신인작품상국무총리상홍조근정훈장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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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6/03/02 [16:52]  최종편집: ⓒ 아산톱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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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제20대 대통령선거 (예비)후보자 및 그의 배우자, 직계존·비속이나 형제자매에 과하여 허위의 사실을 유포하거나, 이들을 비방하는 경우 「공직선거법」에 위반됩니다. 대한민국의 깨끗한 선거문화 실현에 동참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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