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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 연해주 이주 150주년을 경축하며
<광복 69주년 기념 특별기고>
 
신상구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국학박사, 향토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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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고려인 중앙아시아 이주 배경과 경로

2014년 8월19일 오후 3시경에 방영된 KBS-1TV <세계는 지금> 프로그램에 의하면, 카자흐스탄 고려극장이 개관 82주년을 맞이하여 여천(汝千) 홍범도(洪範圖) 장군을 기리는 연극을 공연하여 카자흐스탄 고려인들의 주목을 받았다고 한다.

한국인이 1863년부터 연해주로 이주했다는 공식적인 기록이 있다. 그래서 2013년은 한인 연해주 이주 150주년이 되는 아주 뜻 깊은 해이다.

조선의 국운이 기울어지던 1863년 가난한 농민들 13가구가 살길을 찾아 눈보라 휘몰아치는 우수리강 유역에 괴나리 봇짐을 풀어놓은 것이 첫 러시아 이주다. 그 후 일제의 조선 강점과 3·1운동을 계기로 농민들과 독립지사들이 러시아 극동지역에 대거 모여들어 1920년대 말에는 25만에 달했다.

19세기 말 망해가던 나라 조선의 민초들은 북방의 중국과 러시아 땅으로 넘어가서 살면서 스스로를 ‘고려인(Korean)' 또는 러시아어로 ‘까레이스끼’라 불렀다. 충북 진천 출생의 민족민중문학의 선구자인 포석(抱石) 조명희(趙明熙, 1894-1938) 시인(극작가)은 1928년 러시아로 이주해서 <선봉>지에 조국을 ’짓밟힌 고려‘라고 표현했다.

소련의 크레믈린은 1937년 한인 강제이주를 계획하면서 연해주의 한인 지도자들 2500여 명을 체포하여 구금했다가 일본의 간첩이라는 죄목으로 사형을 집행했다. 조명희 시인은 1937년 9월17일 자택에서 비밀경찰에 체포되어 이듬해인 1938년 4월15일 사형 언도를 받고 5월11일 사형이 집행되어 44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고려인들은 대부분 일제강점기 때에 항일독립운동을 하던 애국지사와 그 후손들이다. 일제강점기 당시 탄압을 피하여 연해주로 온 항일독립운동가들은 러시아와 중국의 혁명가들과 협력하여 조국의 독립을 위하여 목숨을 바쳤다.

연해주에서 항일독립투쟁을 하던 고려인들은 스탈린의 강제이주 정책에 의해 1937년 일제의 앞잡이라는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중앙아시아(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키스스탄)로 이주되었다. 갑자기 어느 날 경찰들이 고려인 가정에 들이닥쳐 강제로 연행하여 열차에 태우는 바람에 집과 생활 터전을 모두 버릴 수밖에 없었다.

1937년 9월에 탄 열차는 다음 해인 1938년 1월에 중앙아시아의 척박한 땅에 도착했다. 18만 여 명의 고려인들은 주로 타슈켄트와 카자흐스탄 우스토버 부근의 사막에 내려졌다. 그들은 움막을 쳐놓고 삽 과 곡괭이로 황무지를 개간해 벼농사를 짓고 목화를 가꾸며 연명해야 했다.

2.중앙아시아 고려인의 분포와 활약상

중앙아시아의 고려인들은 한랭과 건조의 악조건과 타향살이의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억척 같은 의지와 근면으로 황무지를 개척하여 오늘날 번영을 누리고 있다. 오늘날 중앙아시아에 거주하는 고려인들은 바로 그 망국 유민들의 2, 3세들이다.

정수일 박사의 증언에 의하면, 중앙아시아에는 지금 정처없는 유랑 길을 헤매다 정착한 한인들이 36만 명 가량 살고 있다. 그들 중 우즈베키스탄에 20만여 명(인구의 0.9%), 카자흐스탄에 10만여 명(인구의 0.7%), 키르키스탄에 2만여 명(인구의 0.4%)이 살고 있다.

<중앙아시아 3국의 고려인 분포 현황>
▲     © 아산톱뉴스

중앙아시아 3국 중 고려인이 가장 많은 곳은 우즈베키스탄이다. 그 중에서도 타슈켄트 등 대도시에 몰려있다. 대도시에서 고려인을 쉽게 만날 수 있는 곳은 바자르(재래시장)이다. 어느 대도시나 바자르 몇 개씩은 있는데, 어김없이 장사하는 고려 여인들을 만날 수 있다. 고려인들의 매대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게 김치다. 큼직한 배추 폭에 빨간 고추물이 제법 짙게 배어 먹음직스럽다. 무짠지며 오이절임, 나물무침, 심지어 생선 자반까지 푸짐하다.

1945년부터 옛 소련이 해체된 1991년까지 소련 내 14개 민족이 운영하는 콜호즈(집단농장)에서 650명의 노력영웅이 나왔는데, 총인구의 1%밖에 안 되는 고려인들이 139명이나 차지했다고 한다. 이들 가운데 전설적인 이중영웅 김병화가 있다.

연해주에서 태어난 그는 37년 타슈켄트 부근의 사막에 와서 삶의 둥지를 틀었다. 1940년부터 1935년간 ‘북극성콜호즈’(사후 ‘김병화콜호즈’로 개명)란 집단농장을 이끌며 다수확 벼농사로 이름을 날렸다. 이 농장은 지금도 여전히 고려인 700명을 포함해 구성원이 3000여 명이나 되는 큰 농장이다.

고려인 3세인 우즈베크 역사연구소 부소장 발레리 한 박사는『한국철학사』 집필을 통해 우리 철학을 소개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이곳 고려인들은 민족적 자긍심을 안고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고려신문’을 발간하고, 우즈베크 고려인 문화협회, 과학자협회, 경제인협회, 가무단협회 같은 분야별 조직을 두어 활동하고 있다.

알마티에 고려인협회 김로마 회장의 증언에 의하면, 지금 카자흐스탄에는 11만 명의 고려인이 살고 있다. 알마티에 17명의 의원 중 3명이 고려인이고, 고려인협회 부회장인 김게르만 박사는 카자흐스탄뿐만 아니라 CIS 지역에서 유명한 학자인데, 지금 대통령 직속의 선임연구원으로 재직하고 있다.

커자흐스탄 고려인들은 모국어인 한국어는 사용할 일이 적어 대부분 잊어버리게 되었지만, 조상들이 대대로 물려 준 돌잔치·결혼풍습·장례의식 등과 같은 전통문화는 아직도 잘 지켜가며 살고 있다.

카자흐스탄 고려인들은 한국어를 배우려는 열의가 높은데, 한국어 교육기관이 없어 아쉽다. 이제 커자흐스탄 고려인들은 고국인 한국 땅 한 번 밟아보는 것이 소원이다.

3.여천 홍범도 장군의 시신을 국립묘지에 안장해야

여천 홍범도 장군은 커자흐스탄 고려인들을 대표하는 항일독립운동가이다. 그는 1868년 8월27일 평북 양덕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갑산(甲山)으로 이사한 뒤 수렵과 광산 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하였다.

1907년 전국적인 의병봉기에 자극을 받고 있던 중 이 해 9월 일제가 ‘총포 및 화약류 단속법’을 공포하고 포수들의 총을 회수하려 하자, 11월 차도선(車道善)·태양욱(太陽郁)·송상봉(宋相鳳)·허근(許瑾)과 함께 산포대(山砲隊)를 조직한 뒤 삼수(三水)·갑산 지방 포수들의 총포를 회수하러 온 일본군을 대적하여 북청(北靑)·후치령(厚峙嶺)을 중심으로 갑산·삼수·혜산(惠山)·풍산(豊山) 등지에서 유격전을 벌여 격파하였다. 이 싸움에서 그는 9시간의 전투 끝에 적을 전멸시켰는데 한때 갑산을 완전히 장악하였다.

1910년 한국이 일제에 의하여 강제 점령되자 소수의 부하를 이끌고 만주로 건너가 독립군 양성에 전력, 다음 해 부하 박영신(朴永信)으로 하여금 함북 경원(慶源)의 수비대를 습격하게 하여 큰 성과를 거두었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대한독립군의 총사령이 되어 약 400명의 독립군으로 1개 부대를 편성, 국내에 잠입, 갑산·혜산·자성 등의 일본군을 급습하여 전과를 거두었는데, 특히 만포진(滿浦鎭) 전투에서 70여 명을 사살하였다.

<여천 홍범도 장군>
▲     © 아산톱뉴스

1920년 6월 반격에 나선 일본군이 제19사단의 병력과 남양(南陽) 수비대로 부대를 편성하여 독립군 본거지인 봉오동(鳳梧洞)을 공격해 오자, 700여 명의 독립군을 지휘하여 3일간의 치열한 전투를 벌인 끝에 일본군 157명을 사살하였다.

이 봉오동전투는 그때까지 독립군이 올린 전과 중 최대의 승전으로 기록된다. 같은 해 9월에는 청산리전투(靑山里戰鬪)에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 제1연대장으로 참가하였다. 그 후 독립운동단체가 흑룡강의 국경지대에 집결하자 항일단체들의 통합을 주선하여 대한독립군단을 조직하고 부총재가 되었다.

1921년 러시아령(領) 흑하자유시(黑河自由市)로 이동하여 스랍스케 부근에 주둔, 레닌 정부의 협조를 얻어 고려혁명군관학교를 설립하는 등 독립군의 실력양성에 힘썼으나, 같은 해 6월 소련 당국의 한국독립군에 대한 무장해제령으로 빚어진 자유시사변(自由市事變)을 겪은 뒤 이르크츠크로 이동하였다. 이후 연해주에서 콜호스(집단농장)를 차려 농사를 지으며 한인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시켜 한국의 독립에 많이 기여했다.

한편 여천 홍범도 장군은 운초 계연수 선생이 1911년 3월에 남만주 관전현에서『환단고기』30권을 발간하는 데에 발간비를 지원해 주어 한민족사 정립에 크게 기여했다.

홍범도 장군은 1937년 스탈린의 한인 강제이주 정책에 의하여 카자흐스탄의 크질오르다로 강제 이주되었다. 그는 인생 만년을 고려극장 야간수위, 정미소 노동자로 일하면서 가난하게 살다가 1943년 10월25일 76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1982년 카자흐스탄의 한글신문 《레닌기치》 기자들과 한인들이 중심이 되어 크질오르다 중앙공동묘역으로 이장하였으며, 흉상과 3개의 기념비를 세웠다. 그리고 말년에 거주하던 집은 크질오르다의 역사기념물로 지정되었고, 집 근처의 거리는 '홍범도 거리'로 지정되었다.

해방후 한국은 고도의 압축성장으로 세계 10대 경제강국으로 발전했지만, 한국정부에서 홍범도 장군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는 행사를 한 것은 별로 없는 것 같다.

1962년에 대한민국 정부에서 홍범도 장군이 독립운동에 기여한 공훈을 기려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지만, 지금도 홍범도 장군의 시신은 국립묘지에 안장되지 못하고 카자흐스탄에 묻혀 있다.

국가보훈처는 도대체 무엇을 하는 곳인지 묻고 싶다. 국가보훈처는 하루라도 빨리 홍법도 장군의 시신을 국립묘지에 안장하고, 그분의 업적을 기리는 다각적인 추모행사를 해야 한다.

4. 고려인들의 소원은 고국 땅을 한 번 밟아보는 것

지금 우리는 중앙아시아 고려인들을 그럴싸하게 ‘한인’이라고 부르지만,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다. 왜냐하면 일본, 미국의 한인들은 ‘재일교포’니 ‘재미교포’니 하면서 한겨레임을 과시하나, 중앙아시아, 중국의 한인들에게는 한국정부가 온정을 베풀기에 인색하기 때문이다.

지금도 아직 늦지 않았다. 한국 정부가 하루라도 빨리 중앙아시아 3국과 다각적인 교류를 하여 고려인들의 권익을 제고해야 한다. 그리고 한국 정부가 중앙아시아 고려인 1-2 세대들이 다 타계하기 전에 고국인 한국 땅을 한 번 밟아볼 수 있도록 초청외교를 강화하여 중앙아시아 교민들과 후손들의 불만을 빨리 해소해야 한다.

<참고문헌>
1. 정수일, '망국의 한 거름삼아 뿌리내린 원조한류-정수일의 실크로드 재발견', 한국문화의 전도사 고려인들, 2006. 2. 14.
2. '카자흐스탄 알마티-고려인협회', Story of amazing, 2013. 8. 28.
3. '고려인의 강제이주 역사', 아시아/브릿징 프로젝트, 2013. 9. 19일자.
4. 김윤배, '저항시인 조명희의 작가의 집', 경인일보, 2013. 11. 15일자. 18면.


<필자 소개>

▲ © 아산톱뉴스
-신상구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향토사학자/시인/칼럼니스트)


-1950년 충북 괴산군 청천면 삼락리 63번지 담안 출생.

-백봉초, 청천중, 청주고, 청주대학 상학부 경제학과를 거쳐 충남대학교 교육대학원 사회교육과에서 ‘한국 인플레이션 연구(A study of Korean inflation, 1980)’로 사회교육학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UBE) 국학과에서 “태안지역 무속문화 연구(A study of shamanic culture in Taean, 2011)"로 국학박사학위 취득.

-한국상업은행에 잠시 근무하다가 교직으로 전직하여 충남의 중등교육계에서 35년 동안 수많은 제자 양성.

-주요 저서: <대천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아우내 단오축제> 등 4권

-주요 논문: <천안시 토지이용계획 고찰>, <천안 연극의 역사적 고찰>, <천안시 문화예술의 현황과 활성화 방안>, <항일독립투사 조인원과 이백하 선생의 생애와 업적>, <한국 여성교육의 기수 임숙재 여사의 생애와 업적>, <민속학자 남강 김태곤 선생의 생애와 업적>, <태안지역 무속문화의 현장조사 연구>, <태안승언리상여 소고>, <실학자 홍양호의 생애와 업적> 등 50편.

-수상 실적: 천안교육장상, 충남교육감상 2회, 충남도지사상, 국사편찬위원장상, 한국학중앙연구원장상, 자연보호협의회장상 2회, 교육부장관상, <문학 21> 신인작품상, 국무총리상, 홍조근정훈장 등 다수.

-이력: 한국지역개발학회 회원, 천안향토문화연구회 회원, 천안교육사 집필위원, 태안군지 집필위원, 천안개국기념관유치위원회 홍보위원, 대전문화역사진흥회 이사 겸 충청문화역사연구소 소장.

기사입력: 2014/08/22 [02:25]  최종편집: ⓒ 아산톱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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